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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클랏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이라는 프랑스의 단편 소설가의 작품 중에 『진주 목걸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틸드’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서 한 하급 관리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무도회의 초청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무도회에 가게 된 마틸드는 너무나도 기뻐했지만, 기쁨도 잠시 막상 무도회에 가려니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남편이 애써 저축한 돈을 다 찾아 화려한 옷을 사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자 친구를 찾아가 진주 목걸이까지 빌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무도회에 참여하였고 마틸드는 그 무도회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이 한 몸에 쏟아졌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마틸드는 그만 너무나도 놀라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빌려온 진주 목걸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마틸드는 목걸이 값을 장만하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목걸이의 값은 모자랐고, 끝내 큰 빚까지 지고서야 목걸이를 살 수 있었고 그렇게 진주 목걸이는 부자 친구에게 되돌려 졌다. 그로부터 10년간 이들 부부는 빚을 갚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10년 만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산책길에서 예전에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너무나도 초췌하게 변해버린 마틸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마틸드는 마지못해 10년 전 빌렸던 진주 목걸이의 값을 치르느라고 이렇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 가엾은 마틸드, 왜 진작 그 이야기를 내게 해 주지 않았어.... 그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몇 프랑 안 되는 싸구려 장신구였단 말이야.....” 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엎드려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마틸드는 엉뚱한 것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현대인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큰일 날 줄 알지만, 그래서 그것에 목매고 집착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없어도 되는 것,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집착해서 끝내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꼬집고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이 소설에서 그녀의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고 망가뜨린 것은 무엇인가?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남편이 부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고 괴롭힌 것은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가지 않아도 될 무도회에 집착하고, 입지 않아도 될 의상에 집착하고, 걸지 않아도 될 목걸이에 집착해서는 끝내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 버린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남의 눈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목걸이를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의 자존심, 아니 그것은 오히려 열등감이라고 불려야 마땅한 것인데, 그 열등감의 정체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욕심을 내다가 다시 그 욕심에 사로잡히고 마는 그녀 자신의 집착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괴로운 건, 갖고 싶어 하는 그것이 지금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자체이다. 그것을 가리켜 욕심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 무언가 부족한 것, 예컨대 재산이니 지식이니 명예니 건강이니 외모니 하는 그런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정말은 욕심이라고 하는 내적인 것이다. 욕심이야말로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다. 욕심이 없으면 인생은 행복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욕심에 집착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인생은 철저하게 망가지고 부서지고 만다. 그런데 욕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욕심에 사로잡혀 살면서도 그것이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진주 목걸이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몰랐던 마틸드처럼 인생의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살면서도 그것이 욕망과 욕심이 가져다주는 환영과 환상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욕심은 때로 그 모습을 바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또 때로는 염려와 걱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이번 시험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공포가 마틸드의 가짜 진주 목걸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얽어매고 힘들게 하며 괴롭히는 것이다. 실패하면 하는 거지.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그런다고 달라질게 뭐 있나 말이다.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사계절은 순환하며 물은 달고 밥은 맛있지 않은가 말이다. 삶은 성공한 사람들만의 것도 아니고 행복은 결코 성적 순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집착하는 그것, 그것이 삶을 망치는 주범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집착의 끈으로 얽어매는 그것, 그것이 정말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정말 살기 힘든 곳이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이고 밤이면 차가운 영하의 날씨로 얼어붙는 그런 곳이었다. 얼마나 메마른지 풀 한포기도 자랄 수 없는 곳, 그저 바람과 먼지만이 휘날리는 죽음의 땅, 높고 높은 산들이 가로막혀 있는 그런 곳이 광야였다. 바로 그 메마른 광야를 여행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여행을 하는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성전을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먼 곳에서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인 모양이다. 게다가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더구나 시인이 가야할 길에는 높고 높은 산들이 가로막혀 있다. 이스라엘의 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산이 아니다. 사도바울이 넘어 다녔던 타우르스 산맥에는 해발 9,000ft 가 넘는 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세가 10계명을 받았던 시내산의 높이 역시 6,900ft 미터에 달하는데 그 주변의 산들은 대부분 시내산 보다 훨씬 넘는 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단강의 근원이 되는 헐몬산은 4,400 미터가 넘는 산이다. 광야는 험난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으면서도 높다. 그런 산들을 넘어 예루살렘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첫 구절은 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여기서 말하는 산(헤하림, ההרים)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즉 그냥 산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들이 겹쳐 있는 ‘산들’을 말하는 것이다. 넘어야 할 그 많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온 몸에 힘이 쫙 빠진다. 그 많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저걸 어떻게 넘나, 누가 나를 도와 저 산을 넘게 하려나....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편 121편에 등장하는 자연은 모두가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의 상징이다. 낮의 해도, 밤의 달도 다 힘겹고 괴로운 환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 광야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힘겹고 두려운 것들뿐이다. 그래서 힘겨워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다시 고쳐먹는다. 그의 눈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넘어 그 산들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산은 저 혼자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그 산을 거기에 만드신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태양이 저 혼자 떠서 뜨겁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태양을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산이 두렵지 않다. 뜨거운 태양도, 차가운 달도 두렵지 않다. 그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한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산을 만드시고 해를 만드시고 달을 만드신 여호와... 내 인생을 만드시고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불꽃과 같은 눈초리로 우리를 감찰하시며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 바 되시는 여호와... 나의 아버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순간, 산들이 주는 공포에서 해방된다. 그 놀라운 감격을 가지고 이렇게 외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 바깥에 있지 않다. 그분이 바로 나를 지키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것도 한 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지키신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살다보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런 순간 말이다. 꼼짝없이 넘어질 것만 같고 넘어졌다가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문제라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하시고자 하신다면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천지만물을 만드신 분이시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작고 작은 손바닥이지만, 그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손을 떼고 보면 그건 그저 작은 손바닥일 뿐이다. 문제가 내 눈을 가리면 그 문제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 것이 인생이다.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집착해서 10년 세월을 허비한 마틸드처럼, 우리 역시 인생의 문제에 직면하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 문제에만 집착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그건 정말 힘겨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의 눈이 그 산을 넘어 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시인은 아예 산을 넘어 해를 바라보고, 달도 바라본다. 그러나 하나님을 발견한 그에게는 이제 해도 달도 걸릴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다. 사업상 큰 어려움에 처한 그는 절망 가운데 빠져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는 돌아갈 길도 없는 큰 산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도 막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웨슬리는 그 말을 다 들었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였다. 웨슬리는 그저 묵묵히 그 사업가와 함께 잠시 동안 같이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그렇게 걷던 그들 앞에 목장이 하나 보였다. 목장 안에는 소들이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목장 한 쪽으로 긴 돌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도 여전히 소들이 있었는데 담장이 가로막혀 있자 담장 밖을 보기 위하여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웨슬리가 말했다. “저 소들을 보십시오. 저 소들이 담장 곁에서는 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겠습니까?” “그야 담장 밖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사업가의 이 말에 웨슬리가 다시 말했다. “그래요. 인생도 앞을 볼 수 없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산이 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가?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막막한 문제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누군가 도와주어야 할 텐데,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가? 그건 내 삶이 욕심과 두려움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슬들에 얽매여 있기 때문일 뿐이다. 가짜 진주목걸이에 사로잡힌 마틸드처럼, 그렇게 세상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것이고 괴로워하는 것일 뿐이다. 앞이 막혀 보이지 않는다면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산이 막혀 두렵다면 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이 되자. 뜨거운 땡볕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내 우편의 그늘이 되어 주신다. 차가운 달빛에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천지에 그분께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가져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너무나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나 혼자서는 10년을 갚아도 다 못 갚을 진주 목걸이가 그 주인에게 가니 1분 만에 해결되었다. 내 힘으로는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산들도, 견딜 수 없는 낮의 해도, 밤의 달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문제가 되지를 않는 법이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라. 산이 아니라 산을 만드신 분을 보라. 거기에 해결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만족이 있을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칼빈의 5대 교리

    1.전적부패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1-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17::9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요일1:8,10 2.무조건 선택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11:2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8-30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갈라디아,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벧전1:1,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4,5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9:16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13:48 3.제한속죄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요10:11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9:1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4.불가항력적 은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쫒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엡2:8,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롬8:30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9:1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2,13 5.성도의 궁극적 구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10:27-30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31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뉴욕 찬송 302 고센 찬송 245 말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자 ( Readeth, Hear the Words, and Keep. )

  • 미클랏(뉴욕)

    예수 믿으세요 (요 12:44-50) 1.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위임 즉 맡기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그대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서 만백성의 구원자로서의 메시야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임하셔서 모든 사람을 섬기시고 봉사하시는 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본래 하나님이시지마는 완전한 사람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로서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말씀, 빛, 생명, 어린 양, 인자, 그리스도 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셨던 분으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며, 하나님께 속한 분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절) 빌립이 이렇게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2.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어둠의 세상이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을 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참 진리의 빛이 없었습니다. 사망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빛이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미움과 자기만 잘났다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서로 갈등하는 세상 속에 진정한 사랑의 빛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안에 가하는 사람은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7-48) 예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께서는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이시며 빛 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빛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46절) 우리가 언제 빛의 자녀가 됩니까? 선행을 통하여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순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는 적어도 3가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과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됩니다. 셋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의 최고의 은혜와 영광은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47절)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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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금세기 갑부 16인’에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서 알려진 록펠러(839-1937)가 1위이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억만 장자가 록펠로 혼자 뿐이었으며 일주일 수입이 1백만 달러나 되었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는 어릴 때부터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다음의 10가지 교훈을 철저하게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 안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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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도 없는 경건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다. 2.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다. 3.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영적인 낮은 포복이다. 4. 기도자가 피해야 할 교만은 기도 많이 한다는 교만이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사상, 그리고 사역에 감화되어 하나님께 설득되는 것이다. 6.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자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7. 기도자는 바른 기도를 통하여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점점 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바뀐다. 8. 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인생 청사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9.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집을 짓는 벽돌이다. 10. 기도는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11. 기도는 세상적인 욕심의 발전소가 아니라, 소방서이다. 12. 기도가 없을 때에 마음은 세상 것으로 무거워지고, 기도가 있을 때 마음은 성령과 하늘의 것으로 충만하다. 13. 기도는 언뜻 보면 좁은 길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넓은 길이다. 14. 기도는 우회도로처럼 보이나 실상은 지름길이다. (요령, 약삭빠름, 잘남보다 더 빠르다). 15. 세상에서 가장 줄을 잘 서는 방법은 기도이다. 16. 세상의 성공에는 후유증이 있으나 기도에는 후유증도 뒤탈도 전혀 없다. 17. 세상의 모든 후원에는 용수철처럼 조건이 달려있지만 (string-attached), 기도에는 기도자를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 다는 용수철이 달려있다 (God-attached). 18. 기도 자체는 무능이나 하나님은 기도의 무능을 통해 전능전지의 역사를 하신다. 19.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20. 기도 없는 곳에 사람만 일하고, 기도 있는 곳에 하나님이 일한다. 21. 기도는 노력 더하기 노력이 아니라, 나의 노력 곱하기 노력이다. 22.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이고,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이다. 23. 기도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이다. 24. 기도는 예수님을 닮는 최상의 방편이다. 25. 기도 여행의 목적지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26. 기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7. 기도는 노동절약 장치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8.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할 삶과 기도의 내용은 같다. 29. 하나님께 감동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할 때 기도는 중언부언이 된다. 30.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기도자는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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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에 처했을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외롭거나 두려울때 시편 23편으로가세요 신앙인으로써 확신이 필요할때 로마서 8장 1절에서 30절로 가세요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30절로 가세요 죄를 지었을 때는 시편51편으로 가세요 근심이 있을때에는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34절로 가세요 괴로움과 위기 안에 있을때에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풀이 죽어 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것 같을 때에는 로마서 8장 31절에서 37절로 가세요 일이나 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을때 시편121편을로 가세요 투자할일이나 돌려줄 일이있을때에는 마가복음 10장으로 가세요 믿음의 발동이 필요할 때는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세요 좁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도할때는 시편 67편으로 가세요 슬플 때에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사람이 실망시킬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때는 시편 139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하나님 보다 위대하게 보일때는 시편 90편으로 가세요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의기소침할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작아보이고 자신은 커보일때 시편19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갈때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돈이 없을때에는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이 불친절 해보이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내가 한 일에 낙심될때 시편126편으로 가세요 바울의 행복의 비밀은 골로새서 3장12절에서 17절로 가세요 기독교의 관념에 대해 고린도전서 5장15절에서 19절로 가세요 아주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사야55장으로 가세요 다른사람과 잘 지내려면 로마서 12장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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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 때문에 지신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 하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젼은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죄인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후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스스로 나의 죄를 담당하시므로 스스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지신 것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십자가에서 3시간에 걸친 무서운 어둠을 견뎌내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을 골고다 언덕에 흘리시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죄 값은 다 지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로 이 소망! 이 구원의 소망 때문에 예수님은 캄캄한 고독과 절대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심판과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한 몸에 지고 그 아픔을 견디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여야만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값은 다 지불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께 믿음으로 연합된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을 바로 볼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벧전2:24b -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더 이상 죄는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 하늘가는 밝은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을 모를 때는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예수님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삼상17:31-40 주의 종이 가서 싸우리이다 주일예배 막14:27-31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찬송 399장 And Jesus saith unto him, Verily I say unto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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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에 어느 부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취미는 비싼 옷을 입고 밤마다 이 파티에서 저 파티로 , 전전하며 술과 놀음과 여인들 사이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녁이면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인들의 집집마다 창문 아래서 세레나데를 불러대고는 또 술을 퍼 마십니다. 그에게 유일한 꿈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에 나가 싸워 유명한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약했기 때문에 그 꿈마저도 물거품이 되 버렸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심한 열병에 걸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그의 귀전에 낯선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왜 너의 삶의 주인을 따르고자 하지 않느냐?” 그는 정신이 번쩍 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십자가 형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그 날의 새벽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면 웃기 시작했고, 실제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고 묻자, 그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의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사랑이요,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증거하며 다녔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의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이 사람이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아씨시의 성자 프랜시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예수님이 너무나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 희생은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 크신 사랑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으셨다면, 당신은 이 크신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어떤 걱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주님께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신앙을 가지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 그래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날마다 드려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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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그 얼굴 흉측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 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안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 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 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어머니의 감동적인 사랑을 봅니다. 이 어머니라고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을 기꺼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가운데 가장 숭고하고 값지고 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값지고 숭고하고 가장 귀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일까요? 성경은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왜? 귀중하고 값진 사랑이신가? 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크시고 놀랍고 숭고한 사랑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벧전2: 22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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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비바람이 끝까지 가는 일이 없고 반드시 맑게 개는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비바람 속에 만 몰아넣어 버리신다면 우리가 과연 살맛이 나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죽지 못해 사는 맛 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항상 비바람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활짝 개는 맑은 날과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궂은일을 만나면 뭐라고 위로합니까? “좋은 일이 있을 것이야,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힘내,” 이렇게 위로하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비바람을 맞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소망의 무지개를 본 사람은 노아입니다 인간들의 죄가 관영하여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이르자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잘 섬기는 노아를 선택하셔서 방주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아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겠습니까? 세상에 저들이 보기에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서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깎아 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아침부터 올라와 노아를 조롱하는 일로 하루를 보냅니다. 어떤 이들은 모였다하면 노아 가족들이 산에서 배를 만드는 것을 씹으며 조롱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직접 노아에게 비를 봤냐고 따지며 대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노아의 배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노아가 왜? 저런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저렇게 싫어하고 노아를 무시하고 조롱하는데도 왜 노아는 저렇게 배를 만들까?” 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방주에 동참하여 홍수에서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를 조롱만 하고 비판만 했지, 노아가 배를 만드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무관심, 이런 무관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병이나 고치고, 기적이나 일으키는 선지자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왜 저분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가?” 안타까워하며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님 외에 두 강도 중에 다른 한 강도를 보세요 이런 무관심이 예수님 때 만인가요? 지금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믿는 자를 보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보십시오.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일까? 과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예수 믿으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 사람들은 믿는 것일까?” 라는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시나요? “나는 예수님을 안다 예수님을 분명히 안다. 나는 예수님이 가장 좋다. 그래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라고 확신하며 고백할 수 있습니까? 드디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하늘의 창이 열려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렸습니까? 40일을 내렸습니다. (창9)

  • 미클랏(고센)

    인간들의 사랑 속에는 언제나 사심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하얀 것, 순수한 까만 것, 순수함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의 행복을 구한다든지, 그 사람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무서운 착취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과 인기와 존경을 수입하고 그 사람과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거나 주종 관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백불의 사랑을 주고는 자기 장부에는 받을 것을 천불이라 적어 놓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사랑을 베푼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또 그것이 세상에 선전되기를 바라며 그 보답이 어디선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계산을 하고 타산을 합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랑하기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무슨 척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랑을 시금석으로 분석해 보면 역사에 알려진 위대한 영웅적인 사랑의 행동에도 불순한 것이 30퍼센트, 어떤 것은 40퍼센트,어떤 것은 90퍼센트, 혹 어떤 것은 세상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위선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순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에게 채무를 지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미국의 새로운 '예수 운동', 3만 5천명 회집 기도회

    미국의 새로운 '예수 운동', 3만 5천명 회집 기도회 바렛 신임 대법원 법관 임명, 낙태법 폐지를 앞두고, 워싱턴 DC에서 부흥을 위한 기도회 개최 2020년 10월 26일(미국 현지시간) ChristianHeadlines.com에 따르면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기도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지난 주일 미국의 미래를 위해 워싱턴 DC에서 ‘ Let Us Worship 투어’에 35,000명 이상 모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 하루 종일 여러 장소에서 모인 투어는 대법원 앞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신자들은 Amy Coney Barrett 판사의 대법원 지명을 위한 기도회와 예배가 있었다”고 했다. 국제 복음전도 교회(International Outreach Church)의 Charles Karaku 박사는 “수많은 낙태 문제에 대하여 개탄하여 이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 워싱턴 DC 대법원의 계단에서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마른 뼈의 미국 계곡에 섰던 것처럼 느껴졌다. 낙태된 아기의 마른 뼈가 62,000,000개로 가득 차 있다 ”라고 그의 페이스 북에 썼으며, “ 그 많은 수의 낙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인구와 동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카루 쿠는 “ 미국 전역의 낙태 클리닉의 자금을 빼고 폐쇄하고 찬성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제거하고 교체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그는 “이 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찬성하는 정치인과 일치하는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적 신앙이 궁극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또한 “우리는 교차로에 있다. 지금이 대법원의 낙태 찬성법안을 뒤집는 것을 볼 때이다”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집회는 또한 내셔널 몰로 이동하기 전에 대통령 교회와 링컨 기념관 앞에서기도했다고 했다. 또한 CBN 뉴스에 따르면 조쉬 하울리 상원의원은 이 집회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미국인들이“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 미국은 그 주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고 말했으며, 또한 그는 “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가 가진 희망과 기쁨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 Hawley 상원 의원은 신자들에게 Barrett 판사를 위해 그녀의 신앙과 삶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월요일 상원에서 배렛 판사에 대한 인준 모임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 젠 테젠 프랭클린 목사가 대규모의 집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는 “ 놀라운 예배의 밤을 위해 @seanfeucht와 함께 DC에서 DC에서 설교하게 되어 영광이다.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영광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라고 트윗을 했다. 2021년 새해 전야에 ‘Let Us Worship 투어’ 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역사적인 오순절 부흥회인 ‘1906 Azusa Street Revival’ 과 같은 장소에서 특별한 모임을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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