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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클랏 (고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비바람이 끝까지 가는 일이 없고 반드시 맑게 개는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비바람 속에 만 몰아넣어 버리신다면 우리가 과연 살맛이 나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죽지 못해 사는 맛 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항상 비바람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활짝 개는 맑은 날과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궂은일을 만나면 뭐라고 위로합니까? “좋은 일이 있을 것이야,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힘내,” 이렇게 위로하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비바람을 맞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소망의 무지개를 본 사람은 노아입니다 인간들의 죄가 관영하여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이르자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잘 섬기는 노아를 선택하셔서 방주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아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겠습니까?


세상에 저들이 보기에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서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깎아 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아침부터 올라와 노아를 조롱하는 일로 하루를 보냅니다. 어떤 이들은 모였다하면 노아 가족들이 산에서 배를 만드는 것을 씹으며 조롱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직접 노아에게 비를 봤냐고 따지며 대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노아의 배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노아가 왜? 저런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저렇게 싫어하고 노아를 무시하고 조롱하는데도 왜 노아는 저렇게 배를 만들까?” 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방주에 동참하여 홍수에서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를 조롱만 하고 비판만 했지, 노아가 배를 만드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무관심, 이런 무관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병이나 고치고, 기적이나 일으키는 선지자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왜 저분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가?” 안타까워하며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님 외에 두 강도 중에 다른 한 강도를 보세요 이런 무관심이 예수님 때 만인가요? 지금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믿는 자를 보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보십시오.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일까? 과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예수 믿으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 사람들은 믿는 것일까?” 라는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시나요? “나는 예수님을 안다 예수님을 분명히 안다.


나는 예수님이 가장 좋다. 그래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라고 확신하며 고백할 수 있습니까? 드디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하늘의 창이 열려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렸습니까? 40일을 내렸습니다. (창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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