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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클랏(뉴욕)
예수 믿으세요 (요 12:44-50) 1.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위임 즉 맡기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그대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서 만백성의 구원자로서의 메시야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임하셔서 모든 사람을 섬기시고 봉사하시는 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본래 하나님이시지마는 완전한 사람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로서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말씀, 빛, 생명, 어린 양, 인자, 그리스도 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셨던 분으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며, 하나님께 속한 분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절) 빌립이 이렇게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2.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어둠의 세상이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을 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참 진리의 빛이 없었습니다. 사망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빛이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미움과 자기만 잘났다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서로 갈등하는 세상 속에 진정한 사랑의 빛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안에 가하는 사람은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7-48) 예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께서는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이시며 빛 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빛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46절) 우리가 언제 빛의 자녀가 됩니까? 선행을 통하여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순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는 적어도 3가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과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됩니다. 셋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의 최고의 은혜와 영광은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47절)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미클랏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금세기 갑부 16인’에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서 알려진 록펠러(839-1937)가 1위이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억만 장자가 록펠로 혼자 뿐이었으며 일주일 수입이 1백만 달러나 되었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는 어릴 때부터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다음의 10가지 교훈을 철저하게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 안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미클랏
1. 기도 없는 경건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다. 2.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다. 3.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영적인 낮은 포복이다. 4. 기도자가 피해야 할 교만은 기도 많이 한다는 교만이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사상, 그리고 사역에 감화되어 하나님께 설득되는 것이다. 6.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자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7. 기도자는 바른 기도를 통하여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점점 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바뀐다. 8. 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인생 청사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9.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집을 짓는 벽돌이다. 10. 기도는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11. 기도는 세상적인 욕심의 발전소가 아니라, 소방서이다. 12. 기도가 없을 때에 마음은 세상 것으로 무거워지고, 기도가 있을 때 마음은 성령과 하늘의 것으로 충만하다. 13. 기도는 언뜻 보면 좁은 길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넓은 길이다. 14. 기도는 우회도로처럼 보이나 실상은 지름길이다. (요령, 약삭빠름, 잘남보다 더 빠르다). 15. 세상에서 가장 줄을 잘 서는 방법은 기도이다. 16. 세상의 성공에는 후유증이 있으나 기도에는 후유증도 뒤탈도 전혀 없다. 17. 세상의 모든 후원에는 용수철처럼 조건이 달려있지만 (string-attached), 기도에는 기도자를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 다는 용수철이 달려있다 (God-attached). 18. 기도 자체는 무능이나 하나님은 기도의 무능을 통해 전능전지의 역사를 하신다. 19.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20. 기도 없는 곳에 사람만 일하고, 기도 있는 곳에 하나님이 일한다. 21. 기도는 노력 더하기 노력이 아니라, 나의 노력 곱하기 노력이다. 22.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이고,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이다. 23. 기도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이다. 24. 기도는 예수님을 닮는 최상의 방편이다. 25. 기도 여행의 목적지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26. 기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7. 기도는 노동절약 장치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8.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할 삶과 기도의 내용은 같다. 29. 하나님께 감동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할 때 기도는 중언부언이 된다. 30.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기도자는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
- 미클랏
위험에 처했을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외롭거나 두려울때 시편 23편으로가세요 신앙인으로써 확신이 필요할때 로마서 8장 1절에서 30절로 가세요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30절로 가세요 죄를 지었을 때는 시편51편으로 가세요 근심이 있을때에는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34절로 가세요 괴로움과 위기 안에 있을때에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풀이 죽어 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것 같을 때에는 로마서 8장 31절에서 37절로 가세요 일이나 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을때 시편121편을로 가세요 투자할일이나 돌려줄 일이있을때에는 마가복음 10장으로 가세요 믿음의 발동이 필요할 때는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세요 좁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도할때는 시편 67편으로 가세요 슬플 때에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사람이 실망시킬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때는 시편 139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하나님 보다 위대하게 보일때는 시편 90편으로 가세요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의기소침할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작아보이고 자신은 커보일때 시편19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갈때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돈이 없을때에는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이 불친절 해보이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내가 한 일에 낙심될때 시편126편으로 가세요 바울의 행복의 비밀은 골로새서 3장12절에서 17절로 가세요 기독교의 관념에 대해 고린도전서 5장15절에서 19절로 가세요 아주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사야55장으로 가세요 다른사람과 잘 지내려면 로마서 12장으로 가세요
- 미클랏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 때문에 지신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 하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젼은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죄인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후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스스로 나의 죄를 담당하시므로 스스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지신 것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십자가에서 3시간에 걸친 무서운 어둠을 견뎌내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을 골고다 언덕에 흘리시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죄 값은 다 지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로 이 소망! 이 구원의 소망 때문에 예수님은 캄캄한 고독과 절대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심판과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한 몸에 지고 그 아픔을 견디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여야만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값은 다 지불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께 믿음으로 연합된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을 바로 볼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벧전2:24b -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더 이상 죄는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 하늘가는 밝은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을 모를 때는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예수님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삼상17:31-40 주의 종이 가서 싸우리이다 주일예배 막14:27-31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찬송 399장 And Jesus saith unto him, Verily I say unto thee,
- 미클랏
이탈리아에 어느 부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취미는 비싼 옷을 입고 밤마다 이 파티에서 저 파티로 , 전전하며 술과 놀음과 여인들 사이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녁이면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인들의 집집마다 창문 아래서 세레나데를 불러대고는 또 술을 퍼 마십니다. 그에게 유일한 꿈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에 나가 싸워 유명한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약했기 때문에 그 꿈마저도 물거품이 되 버렸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심한 열병에 걸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그의 귀전에 낯선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왜 너의 삶의 주인을 따르고자 하지 않느냐?” 그는 정신이 번쩍 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십자가 형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그 날의 새벽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면 웃기 시작했고, 실제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고 묻자, 그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의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사랑이요,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증거하며 다녔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의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이 사람이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아씨시의 성자 프랜시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예수님이 너무나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 희생은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 크신 사랑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으셨다면, 당신은 이 크신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어떤 걱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주님께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신앙을 가지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 그래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날마다 드려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미클랏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그 얼굴 흉측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 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안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 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 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어머니의 감동적인 사랑을 봅니다. 이 어머니라고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을 기꺼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가운데 가장 숭고하고 값지고 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값지고 숭고하고 가장 귀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일까요? 성경은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왜? 귀중하고 값진 사랑이신가? 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크시고 놀랍고 숭고한 사랑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벧전2: 22 - 25)
- 미클랏 (고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비바람이 끝까지 가는 일이 없고 반드시 맑게 개는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비바람 속에 만 몰아넣어 버리신다면 우리가 과연 살맛이 나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죽지 못해 사는 맛 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항상 비바람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활짝 개는 맑은 날과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궂은일을 만나면 뭐라고 위로합니까? “좋은 일이 있을 것이야,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힘내,” 이렇게 위로하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비바람을 맞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소망의 무지개를 본 사람은 노아입니다 인간들의 죄가 관영하여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이르자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잘 섬기는 노아를 선택하셔서 방주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아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겠습니까? 세상에 저들이 보기에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서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깎아 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아침부터 올라와 노아를 조롱하는 일로 하루를 보냅니다. 어떤 이들은 모였다하면 노아 가족들이 산에서 배를 만드는 것을 씹으며 조롱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직접 노아에게 비를 봤냐고 따지며 대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노아의 배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노아가 왜? 저런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저렇게 싫어하고 노아를 무시하고 조롱하는데도 왜 노아는 저렇게 배를 만들까?” 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방주에 동참하여 홍수에서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를 조롱만 하고 비판만 했지, 노아가 배를 만드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무관심, 이런 무관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병이나 고치고, 기적이나 일으키는 선지자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왜 저분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가?” 안타까워하며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님 외에 두 강도 중에 다른 한 강도를 보세요 이런 무관심이 예수님 때 만인가요? 지금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믿는 자를 보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보십시오.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일까? 과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예수 믿으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 사람들은 믿는 것일까?” 라는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시나요? “나는 예수님을 안다 예수님을 분명히 안다. 나는 예수님이 가장 좋다. 그래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라고 확신하며 고백할 수 있습니까? 드디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하늘의 창이 열려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렸습니까? 40일을 내렸습니다. (창9)
- 미클랏(고센)
인간들의 사랑 속에는 언제나 사심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하얀 것, 순수한 까만 것, 순수함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의 행복을 구한다든지, 그 사람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무서운 착취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과 인기와 존경을 수입하고 그 사람과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거나 주종 관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백불의 사랑을 주고는 자기 장부에는 받을 것을 천불이라 적어 놓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사랑을 베푼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또 그것이 세상에 선전되기를 바라며 그 보답이 어디선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계산을 하고 타산을 합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랑하기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무슨 척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랑을 시금석으로 분석해 보면 역사에 알려진 위대한 영웅적인 사랑의 행동에도 불순한 것이 30퍼센트, 어떤 것은 40퍼센트,어떤 것은 90퍼센트, 혹 어떤 것은 세상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위선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순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에게 채무를 지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미클랏(뉴욕)
닐 앤더슨의 저서 “내가 누구인지 알겠습니다” 중에서 내가 승리해야 할 이유를 20가지로 정리하면서 Nyskcian이라면 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이 성공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는 야곱처럼 2008-2010까지는 우리의 성공의 해이어야 합니다 1.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내가 할 수 없겠는가?(빌4:13) 2.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고 했는데, 왜 내가 부족하겠는가?(빌4:19) 3.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인데,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딤후1:7) 4.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분량만큼 믿음을 주셨는데, 왜 내가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데 믿음이 부족하겠는가?(롬12:3) 5.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오.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휘할 것인데, 왜 내가 약하겠는가?(시27:1, 단11:32) 6.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신데, 왜 내가 사단의 지배를 허용하겠는가?(요일4:4) 7.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이기에 하시는데, 왜 내가 실패하리라고 생각하겠는가?(고후 2:14) 8. 내가 지혜가 부족하여 구할 때 꾸짖지 아니하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내게 지혜가 부족하겠는가?(고전1:30, 약1:5) 9.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신실하심과 소망이 있는데 왜 내가 우울해져야 하는가?(애3:21-23) 10.나를 돌봐주시는 그리스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데 왜 내가 염려하고 두려워하겠는가?(벧전5:7) 11.주의 성령이 계시는 곳에 자유함이 있는데, 왜 내가 멍에 속에 있겠는가?(갈5:1) 12.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왜 내가 정죄받은 것처럼 두려워하겠는가?(롬8:1) 13.그리스도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내가 외로워하겠는가?(마28:20, 히13:5) 14.주께서 나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속량하시고,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는데, 왜 내가 저주를 받았거나 불행한 희생자라고 느끼겠는가?(갈3:13,14) 15.바울처럼 내가 모든 환경에서 모든 비결을 배웠는데, 왜 내게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빌4:11) 16.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도를 나대신 속제물로 삼으사 나를 의롭게 하셨는데, 왜 내가 무가치한 사람처럼 느끼겠는가?(고후5:21) 17.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니 아무도 나를 해할 자가 없는데, 왜 내가 박해와 핍박 앞에 피해의식을 갖겠는가?(롬8:31) 18.오직 화평의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지식을 주시는데, 왜 내가 혼란에 빠지겠는가?(고전14:33, 2:12) 19.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에 이길 수 있는데, 왜 내가 실패할까 두려워하겠는가?(롬8:37) 20.예수께서 세상과 세상의 환란을 모두 이기신 것을 알고 나니 담대함이 있는데, 왜 생활의 어려움으로 고민하겠는가?(요 16:33)
- 미클랏(고센)
구원(inheritance)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구원은 하나님과 내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구원은 만세전에 이미 예정된 것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4-5)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외는 없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구원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죄에 대한 회개와 복음에 대하여 전적이고 개인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7-38) 구원받는 것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개인적이고 공개적인 경험이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 미클랏(뉴욕) jan 29 2007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히브리서 11:1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이같이 보이지는 않으나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죽음 후에 그곳에서 복을 누리게 된다는 소망을 우리의 믿음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의 모든 생애가 이와 같은 믿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농부들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홍수나 우박 등이 갑자기 와서 농부의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만 농부는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수고가 머지 않아 수확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지 어떤 종류의 믿음이라도 갖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희랍어 신약성경에서 찾아보면 "믿음(faith)"과 "믿다(believe)"는 같은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believe)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faith)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롬 10:17).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성경을 읽던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듣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8:26)" 하시고 꾸짖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 라고 가나안 여인을 칭찬하신 적도 있습니다. 또, 자기 하인을 고쳐주기를 간청한 백부장을 보시고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심지어 산을 옮길만한 믿음(고전 13:2)을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그러나 어떤 종류의 믿음이라도 다 구원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니라(요 12:42)." 이런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하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그 믿음을 고백할 수 없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니 심판 날에 주님께서 그와 같은 자들을 모른다고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일까요? 그것은 사탄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가진 믿음과는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야고보서 2:19에는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사탄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구원 얻는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는 믿음만 있었지 진정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복종이며 순종인데 저들 마귀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임을 알고 믿기는 했지만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은 갖고 있었으나 그리스도를 대적하였습니다. 머리로는 믿었지만, 중심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로마서 16:26에서 순종을 하지 않는 믿음은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이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무언가를 행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지시하실 때 왜냐고 묻지 않았으며 지체하지 않고 행했습니다. 이렇듯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과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복은 복종과 순종을 통해 나타낼 때라야 비로소 받을 수 있습니다. 시리아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함을 받기 위해서는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담그라는 선지자 엘리사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마침내 부하의 권면으로 일곱 번 몸을 잠그자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왕하 5장).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아만이 그 마음을 바꿔 복종하는 순간 비로소 그의 문둥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곧 나아만이 병고침을 받은 것은 그의 복종의 결과인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자 하실 때 믿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는 거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선생이 말씀하시는데 할 수 없이 가야만 했고 그물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말씀에 의지해서 복종한 것이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때 두 가지를 고백하는데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 하는 고백이었고 또 하나는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라 하였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구성이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복종을 통해서 얻은 믿음으로 순종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라고 하는 영적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죄라고 하는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에 대한 증거를 다음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도록 인도함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들어갈 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빌립보 간수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가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라고 물었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간수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다음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3-34)." 그는 믿은 후 회개했습니다. 사도들의 맞은 자리를 씻어준 것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친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회개와 세례는 믿음의 고백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