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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렇게전도했다> 예수영접 「놀라운 축복」 체험 간증


⊙ 「방랑벽 남편」으로 고통받는 이웃 믿음전파/하루에도 몇번씩 들러 "교 회 나가세요" 설득/들은척도 않던 부인 신앙생활후 가정평화 찾아 나는 어릴 적 몇번 교회에 가본적은 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혼후 2년쯤 지났을때 친정어머니가 이름모를 병환으로 고통 받으시다 결국 주님을 영접하고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일을 계기로 친정은 모 두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신앙생 활을 하지 못했다.


얼마후 남편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그많던 재산을 다 탕진하게 되고,엄한 시 집살이로 인한 스트레스,연탄가스로 인한 시누이의 죽음 등이 나의 영혼을 짓 누르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시 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모든 일들로 인해 나는 화병에 시달려야 했고 심한 위병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나는 예수 믿으라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교회나갈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고통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는 지 결국은 허락해 주었다. 나는 아이들과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병 고침도 받게 됐다. 얼마동안 그렇게 다니다 보니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다른 사 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 다. 「하나님,남편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남편의 영혼을 구원하 여 주시옵소서」라며 날마다 기도했더니 교회얘기만 나오면 펄펄 뛰던 남편이 변화받기 시작했다.


우리부부는 함께 새벽기도,철야예배,주일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고 찬송하며 기도했다. 그때부터 우리가정에 놀라운 변화가 일기 시 작했다. 남편 사업도 잘되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아들도 대학에 진 학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전에는 예수 소리만 나와도 펄펄 뛰던 남편이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우리부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에 너무 감사하여 우리가정에 일어난 놀라운 축복을 이웃 에게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웃에서 젯상에 올리는 그릇이나 기구를 파는 일을 하는 집을 전도 하기로 했다. 그집은 남편이 한달이면 20일정도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오곤 해 부인이 심한 우울증과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문턱이 닳도록 방문해 기도하며 우리가정에 일어난 놀라운 축복의 간증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 「아주머니,예수님만 믿고 성령 안에서 살면 남편의 방랑벽도 없어지 고 가정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예수 믿 으세요」 처음엔 들은 척도 안하던 그 부인이 어느날 「우리도 예수님만 믿으 면 집사님 가정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겁니까」하고 물어왔다. 우리는 그 것은 평안의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면서 더욱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관심 과 사랑을 쏟았다.


주님을 영접한 그 부부는 남편의 방랑벽도 없어지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교회봉사에도 앞장서 금년에 집사직분을 받게 됐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가정을 택하고 구원하여 가정천국을 이루게해 주신 하나님.믿고 구한 것 은 다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했을 때 남편을 구원하여 주 시고 남편과 함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영혼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제목 : <나는이렇게전도했다> 하루 9시간 발로뛰며 「말씀」인도

자료원 : 국민일보 24면 전미경

발행일 : 94년 12월 06일


⊙ 경로당·시장 등 두루 누비며 교회출석 설득/"뿌린대로 거둔다" 실감... 최우수 전도상 수상


1992년 10월...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겐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답 고 귀한 추억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안산광림교회에서는 그 때 믿지않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1만명 초청잔치」라는 이름아래 총력 전도를 펼치고 있었다.


교회문턱을 넘어선지 불과 1년 남짓한 시점이었고,예수님품안이 무조건 좋 고 감사하기만 할 때였다. 전도의 비결을 일러 주기 위해 대구에서 오신 정종근장로님께서 전도인원 작정 결신서를 내라고 하셨다. 「많이 쓸수록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장로님의 말을 너무나 확실히(?) 믿은 나머지 남편은 2천명을 적어 냈고,나는 겁도 없이 5천명이나 적어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써낼 땐 그저 동그라미 많이 치는게 잘하는 일 같아서 적어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걱정이 됐다. 출석한지 몇달만에 우리가족 4명을 전도한 전적밖에 없는 내가 무슨 용기로 5천명을 적어냈는지....


아무튼 하나님께 약속을 한 일이라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는「전도 특공대」가 조직됐는데 전도경험이 많은 분을 조장으로 하여 3명이 1개조가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뤄내도록 독려하였다. 같은 여선교회 회장인 김재옥 집사와 박순자집사가 한 조가 되었는데 전도경험이 없는 박집사와 나는 오로 지 베테랑인 김집사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김집사는 먼저 하나님께 약속하도록 만들었다. 「새벽기도 1시간전인 새벽4 시에 나와 기도할 것」과 「아침9시에 집합하여 저녁 6시에 헤어질것!」


다시말해 한달동안은 어떠한 개인적인 용무나 가정의 대소사도 하나님께 약 속드린 「9 to 6」(9시간)의 시간을 범할 수 없다는 일종의 계엄령같은 조치 였다.


아픈 것도 허용되지 않는 전시 이상 상황처럼 오로지 하나님 일로만 다니는 걸 보고 글쟁이 남편은 김집사의 별명을 「독일병정」이라고 지어주었다. 나도 100% 공감했다. 우선 교회에서 나눠준 초청장을 욕심껏 가져다가 봉투를 맞춰서 정성스럽게 넣고 우리의 이름을 새긴 고무도장을 찍었다. 남동생이 물려준 탱크 소리나는 스텔라 자동차가 전도 특공대의 장갑차가 됐다. 그 차에는 교회에서 내준 선물용 쓰레기봉투가 가득했고 초청장,설교지, 광고전단등이 수북했다. 「끌어 오려면 베풀어야 한다」는 김집사의 「노하우」대로 초청한 날에 오기만 하면 확인도장을 받는 티켓도 발부 했고 경로당 노인들에게는 KBS 견학권을 대대적으로 뿌리고 다녔다. 또한 번화가에서는 띠를 두르고 노방전도를 했고 아파트와 연립주택을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교회 글귀가 새겨진 껌과 사탕도 늘 주머니에 불룩하게 갖고 다니며 학생들 과 시장에서 마주치는 주부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는 우선적으로 참여했다. 우리 3인방의 기도는 목숨을 건듯이 맹렬했다. 점심은 시간날 때 먹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우리가 뛴 거리가 작은 안산시에서 5백㎞를 넘어섰으니 꽤 다닌 셈이다. 마침내 우리의 전도로 교회문턱을 넘어선 사람들이 버스로 몇대가 넘었다. 할렐루야! 우리 3인방은 결국 최우수전도상을 탔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그때의 감격과 사랑이 내 영혼과 생활에서 신앙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안산 광림교 회 집사>



제목 : <나는이렇게전도했다> 아이 못 낳는 이웃 설득 교회 인도

자료원 : 국민일보 24면 김송자

발행일 : 94년 11월 29일



⊙ 성도들과 주오기도·성령은혜 확신갖게/출석 8개월만에 「역사」...첫아들 잉태 "보람"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다.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전도될 때 제일 기뻐하신다. 항상 구역식구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베풀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평소 주위에서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몇년 전,옆집으로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마침 아이들에게 줄 간식으로 빵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그들 부부에게 한 접시 듬뿍 담아 가지고 갔다. 나는 결혼한지 얼마안돼 보이고 아기도 없길래 「새댁」이라고 불렀다. 나는 새댁과 많은 이야기를 하던 중 고민을 듣게 되었다. 결혼한지 8년이 지났고 남편은 사대독 자인데 아직 아기가 없어 너무 괴롭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 부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이들 부부를 위해서 기도를 했고,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있는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후 교회에 나가보자고 제안을했다.


「나랑 교회에 함께 나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한 자 곧 그의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좋은 분이거든요」 우선 말로써 전도의 씨를 뿌려 놓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입술을 열어야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후 한달여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무심코 새댁 집앞을 지나는데 백일정성을 드려보라는 등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등 어느 낯선 아줌마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새댁의 집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우선 새댁을 교회에 등록시키고 주일마다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교회사모님과 구역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새댁에게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주기에 바빴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있은지 8개월만에 주님은 새댁에게 태의 문을 열어주 셨다. 그리고는 첫아들을 출산케 하셨고 딸도 주셨다. 지금은 새댁이 멀리 이사를 갔지만 가끔씩 전화를 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전한다. 며칠 전에는 주님을 몰랐던 시댁 어른들이 구원받아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하나님은 부족한 내게 이웃을 동 수 있는 용기를 주셨고 30배 60배 1백배의 은혜로 채워주셨다. 전도의 열매가 이렇게 크고 마음의 풍족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왜 늦게 알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했지만 그리스도 의 향기를 실천할 수 있는 나의 위치가 너무나도 감사하기만 했다. <광복성결 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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