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Results

Search this site

공란으로 1202개 검색됨

  • 헤겔의 철학적 접근

    헤겔은 흙 속을 '진무(塵霧)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흙이란 고난, 좌절, 한계상황, 숙명을 상징한다. 씨앗은 이 흙 속에 들어가야만 싹이 나고, 입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땅속에 들어가서 암흑과 습기와 절망과 죽음과 지옥 그리고 썩음, 이것을 거처 나오는 것이 싹이고 잎이며 꽃이고 열매이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듯 사람은 하늘에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은 "하나님 가슴에 안겨야"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씨앗도 열매를 맺기까지 일곱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이 과정은 철학적 용법으로는 소아(한 알의 밀)가 무아(땅에 떨어져 죽은 상태)가 되고 마침내 대아(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과제는 어떻게 '소아'가 '대아'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소아가 대아로 되는 상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무아'에 이르는 길을 기독교는 십자가로 상징한다. 즉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곧 무아요, 십자가이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바로 다시 사는 것(New Birth)이다. 모든 인간의 삶 중에서 첫째가는 문제는 우리 자아에 관한 문제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참 내가 되느냐?" 내가 가짜의 나를 잊고 진짜의 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나는 '있다'가 아닌 '없다' 즉 대아"라고 설파했다. 대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이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빨리 '내 중심적인 것을 죽이느냐', '자기를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나 우리의 삶이 소아에서 대아로 이르러야 비로서 나도 살고 가정도, 섬기는 교회도, 국가도 살 수 있다는 이 진리를 겸손히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 목회를 한다는 것이

    목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아주 일상적인 목사에게 묻는 말이다 목회(牧會, ministry)는 교역(敎役) 사역(使役)이라고한다 사전에는 "목사 혹은 전도사가 행하는 모든 교역자적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목회자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 목회일 수 있지만 목회에 있어 우선순위가 있고 목회의 본질과 비본질이 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목회외에 어쩌면 목회학에서 말하는 교회 밖에 일을 하고 있다 즉 목회의 비본질적인 것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파라처치 운동이라고 할까 어찌보면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결국 교회가 할일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첫번째 예배회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교회중심의 Movement를 하고 있다 세번째는 예배회복을 통해서 교회와 가정을 살리려고 하기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중에 핵심이 목회자들의 예배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회를 하는 목회자를 영어로 'minister' 혹은 'pastor'라고 부른다. 'minister'에서 파생하는 단어들을 보면 봉사와 관련된 의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pastor'에서 파생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양을 치는 목양(목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단어의 의미를 하나로 합쳐서 협의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목회란 "양무리를 돌보는 섬김"인 것이다. 목회자의 모든 행위가 목회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양무리를 돌보는 일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목회의 우선순위와 본질은 모두 양무리를 섬기는 일에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의 본질이란 양무리를 들보는 일을 의미하며, 영적인 돌봄과 공급, 세움, 지도, 후원, 지지, 격려, 권면, 징계등을 말한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이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개역개정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목회자)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24-29절까지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 특히 28절과 29절을 보면,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개역개정판) 이 말씀은 목회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목회라는 것은 각 사람(28절에 세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영적인 노동이자 수고인 것이다. 더 나아가 목회란 단지 인간의 노력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는 동역적인 노동인 것도 언급하고 있다(29절을 보라!)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이다. 우리가 잘 아는바 그래도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장이다. 이런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는 계속해서 같은 대답을 하였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5,16,17절) 그리고 이 베드로의 대답에 다시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Tend My lambs, 15절), "내 양을 치라"(Shepherd My sheep, 16절), "내 양을 먹이라"(Tend My sheep, 17절)라는 부탁과 위임을 하셨다.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의 목적과 내용과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사람 한사람을 온전(완전)한 자(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봉사의 일(사역)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는 예배 중심으로 양무리를 향하여 말씀과 기도로 돌보며, 치유하고, 가르치며,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회의 원리를 열 가지로 정리들을 한다 1) 목회의 기초는 인격이다. 2) 목회의 본질은 섬김이다. 3) 목회의 동기는 사랑이다. 4) 목회의 척도는 희생이다. 5) 목회의 권위는 복종에서 나온다. 6) 목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7) 목회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8) 목회의 특권은 성장이다. 9) 목회의 능력은 성령이다. 10)목회의 사역은 하나님이 기뻐하여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 기도할 수 밖에는

    얼마 전에 NYSKC MOVEMENT에 협력하며 나를 그림자처럼 돕던 한 분이 어느 한 교회로 부임하셨다 십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말씀 중심에 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활동하며 미주 전 지역은 물론 세계 많은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힘쓰고 애썼던 목사님이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축하하여 주었고 새롭게 시작되는 목회에 기쁨과 기대를 모아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그런데 기존교회에 새롭게 부임하시는 목사님들이 다 그렇듯이 원로목사님과의 관계가 시간이 흐르면 더 낳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소원해지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는 하였다 그러나 내 가깝게 있었던 목사님이 부임하고 이제 3개월 남짓한데 벌써 심상치 않는 조짐이 보이는 것같다 부임할 때 당회의 만장일치 안수집사회의 만장일치와 중직들의 만장일치 제직회에서 반대의견없이 통과되었을 정도로 교회가 환영하고 원로목사님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목회하여 주실 것을 요청할 정도많큼 서로가 통했으며 사역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부임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원로목사님의 목회적 방향은 뒤로 하고라도 신학적인 문제에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같다 예컨대 금식을 하라고 한다든지 기도원에 올라가 말씀을 받아가지고 내려와서 설교하라든지 하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목회경륜이 일년 오년 된 것이 아니고 무려 25년이나 된 목회자요 나름대로 신학을 강단에서 강의하였고 목회의 선상에서 그래도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인데 이처럼 요구하는 것은 좀더 조심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목회자는 기도와 말씀은 생명을 줄과 같고 목회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필수 중에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주문하는 요구 안에는 신령한 목사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설교해야 한다는 식에 목회와 신학의 방향을 요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는듯하다 과거에 많은 목회자들이 이와같은 방법으로 목회를 하였다고 하는 것은 이견이 없다 그리고 또 그와같이 하는 것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같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은사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도와 말씀을 어느 목회자가 거부할 것인가 만약 거부한다면 그것은 목회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씀을 받아서 설교하라는 요구는 현재의 목회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아닌가 또한 현재의 사역에 대한 불만을 신령이라고 하는 영적인 것에 두고 매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고 그것은 곧 신령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구약의 시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나가 전하는 선지자들과 같이 되라는 조건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다 보여주셨고 그것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기록하였으며 그중에 사도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40일만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만난 뒤에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그분이 하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다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영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영이 아니신가 영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관한 것 모든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영을 믿는 다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에 세례를 받아라 등등의 표현을 하는 것은 다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안약을 사서 발라라 하는 말씀들은 성령으로 거듭나 언제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하신 것은 영적인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도 볼 자가 있느니라 하신 것처럼 영적인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신령한 세계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신비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신학적인 문제를 뒤로 하더라도 맡겨진 후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종에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지는 것은 목회적으로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영파라고 하는 한간에 말처럼 그런 목회로 분리되거나 구별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베런스라는 하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성경적으로도 볼 때도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Complete 완전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는 하나이면서 또한 그 나타내심은 다르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되며 그 중 어느 한편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그 삼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안겨준다 삼위일체의 신앙이야 말로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루터나 칼빈이나 카이퍼나 하지 메이천 많은 개혁주의 신앙의 선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원로와 후임의 문제는 어찌보면 영적인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자리싸움이라는 것으로 비추어지지만 사실은 영적인 갈등이 아주 심각하게 작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많은 교회들이 후임자를 찾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과연 영적인 방향이 편향되었는가 아니면 건전하고 벨런스가 잘 받는가 지금까지 내가 해 오던 목회적 방향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들을 찾아 후임자를 선택하고자 하는 것을 흔히 볼수 있다 그때마다 다른 후임자들 보다는 현재의 목회자의 자녀도니 목회자를 후임으로 선임하는 것을 몰 때 의견이 분분하다 세습이라는 말을 하는 것부터 구약에 보면 제사장 집안에서 제사장을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가 하면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고는 한다 눈물과 기도로 이룬 엄청난 재산을 놓고 서로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내부적으로는 세습이 아니라 목회적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외부에서는 대불림이라 하여 사회적 문제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본다 어쩌면 현대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교회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것보다 교회의 세속화 혹은 쇠퇴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해 본다 이것은 단순히 원로와 새로 부임된 목회자와의 관계도 있겠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복잡 미묘한 영적이며 심리적인 문제가 이닐까 혹 경제적인 문제도 그 중에 하나 일 것이며 인간에 욕심도 그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이것이 현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이와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 내의 갈등을 세상법정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싸움박질을 하면서 나의 주장을 관철하겠는가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목회자의 일들은 진정 믿음에 대한 영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누가 옳고 그른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전에 서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난리법석 같은 요즘

    요즘 한국에서는 국민적으로 안타깝고 슬픈 소식에 국가가 마비된 것같은 사건이 벌써 열흘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1년 전에는 한국 해군의 배가 북한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침목되는 사건이 있어 수십명의 희생자를 내어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지었는데 이번에 사건은 300명이나 되는 어린학생들이 어른들에 관행과 타성으로 말미암아 배가 침몰하여 숨지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은 문화는 머추었다는 뉴스의 머릿글을 보고는 참으로 안타깝다 안전교육과 안전조치를 취하고 선상의 메뉴얼에 따라 작동하였다면 별일이 없었을 텐데 하고 안전불감증에 관한 뉴스가 계속나오고 있다 배에 수장이라고 하는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 등등 배에 직원들은 탈출하면서 승객들에게는 기다리라는 방송을 끝으로 어린 학생들이 집단으로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조사가 발표됨에 따라 그 가족은 물론 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져 있다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중에는 야답법석 혹은 난리 법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난리법석이라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라 야단법석에 비슷한 말로 쓰인다 원래 이 말들은 불교에서 쓰는 말로서 자기들에 신에게 법회를 드릴 때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게 될 때 쓰는 말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Make a Fuss About !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쓰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자로는 야단법석 [ 野壇法席 ] 野 : 들 야 壇 : 제터 단 法 : 법 법 席 : 자리 석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며 또한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굶”을 뜻하는 야단법석의 한자 표기를 일부에서는 ‘野壇法席’으로 적고 있으나, 이는 “야외에 베푼 법회”를 뜻하는 말입니다. 시끌벅적하게 떠든다고 할 때는 ‘惹端法席’으로 쓰기도 한다 이와같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고국에 대한 뉴스가 언제나 가깝게 들릴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똑같이 느끼는 이유는 그곳에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생명에 귀함을 알기 떼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와중에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어 요즘 뉴욕서광교회는 오하이오 주 세이빌에 신학교 세우는 일로 바쁘게 돌아간다 뉴욕에서 약50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센신학교의 오픈은 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작은 불꽃하나가 온 산을 태운다는 말씀처럼 뉴욕에서 퀸즈라고 하는 곳에서 롱아일랜드 시티 선니사이드 그 중에서도 그린포인트 4509204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사업이 어느 무식하고 죄인 중에 괴수에게 꿈을 주시고 비젼을 보여주시므로 시작된 일들이 하나 둘 그것들이 이루어져가고 있어서이다 전교인이 움직이며 기쁨과 감사로 이와 같은 이들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차분한 가운데 기도하며 자기가 맡은 역활을 감내하며 내게 주신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애쓰고 있다 난리법석도 아니요 야단법석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정 그리고 예배회복에 대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저들의 신앙으로 나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동안 뉴욕서광교회를 통해서 고센서광교회,나이스크 월드미션을 비롯하여 회복의 신학연구학회(Nyskc Learned Society) 극단 미클랏 , 각 컨퍼런스와 Nyskc Leadership Academy, Goshen Theological Seminary,SKBTV(구원의 소리방송),도사출판 미클랏, 계간 예배회복,웹사이트: (예배회복 예배회복운동 nyskc.org, miclot.org)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은 Nyskc Foundation를 세움으로 그 사업들이 이루어졌다 4월30일 6PM에서 시작되는 이번 Open House는 전교인이 500마일을 차로 달려와서 환영하며 기쁨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며 이웃들을 초정함에 시장을 비롯하여 의회의원들 판사들 변호사 경찰 소방소 등등 현지역에 모든 인사들을 초청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인도하심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어 쓰임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싫은 것과 틀린 것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에 씨앗이라고 말합니다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유행가를 보면 사랑타령이라고 말합니다 좀 어려운 말로 발라드 풍으로 자기의 사랑을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1 중세 유럽에서 형성된 정형시의 하나.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이다.2 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적인 가곡이나 기악곡.3 대중음악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감상적인 노래) 그만큼 사랑이라는 것이 모자란 것이죠 수가성여인이 왜 다른 남자를 6번이나 바꾸어서 살고 있나요 사랑의 만족이 없었기 때문이며 헌전함이나 공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채우기 위해 남자를 바꾸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자를 바꿈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어떤 남자가 나를 채워주려나 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얻지 못하고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세상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졌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을 때는 물길러 나오지 아니하고 빨래하러 나오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랑을 구하려다가 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채우려다고 오히려 사회적 부정적 협오만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 여인에게 사랑은 남자였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남자를 잘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신랑을 잘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 진정으로 자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엉뚱한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 성령의 채워주심이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 영생수가 되시는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왜 이렇게 사랑타령을 하는지를 잘모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처럼 사랑을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으로만 찾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면 여러가지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만들어 생령을 넣어주시므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해 존재)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그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복주심) 하나님이 언약하여 세운 언약의 사람이었습니다(언약의 백성)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구원의 백성) 하나님이 택하여 주셨습니다(믿음의 백성) 그리고 틀린 것은 틀렸다 맞는 것은 맞았다 하신 것이 사랑이셨습니다 그 기준은 언약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말씀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약속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순종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매와 책망 징계가 있고 사랑은 위로와 용서와 이해가 있습니다 싫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싫어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틀린 것을 고치라는 것은 사랑인데 잘못된 것을 싫어하는 것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아니됩니다 틀린 것을 책망하는 것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틀린 점을 지적하고 책망했다고 해서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사랑이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자 자식이 집을 나가버리면 부모가 잘못된 것입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수가성여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영적이지 못한 것이죠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얼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도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은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힘쓰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정신을 차리고"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멀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마음에 미움이 가득차서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미워죽겠으니 기도가 될까요" "사랑은 죄를 미워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깁니다"

  • 세계 선교를 위한 10가지

    1.성경을 선교적인 관점에서 읽어라 하나님께서 민족을 축복하시는 구절을 찾아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널리 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각 부분을 세밀하게 살펴보라. 그리고 각 장에서 발견된 것을 기록하다. 2.선교행사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을 갖으라. 선교 정보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며 매 3-6개월 마다 선교사의 전기를 읽으라. 선교사의 실제 삶과 문제, 사역에서의 성공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며, 선교 행사에 대한 비디오 자료들을 구입해 시청하라. 3.선교사와 깊은 교제를 갖으라. 선교사가 당신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 개인적인 교제를 쌓으며, 선교사를 집으로 초대하며, 그들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서신으로 지속적으로 교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라. 4.선교 환경에 친숙함을 길러라.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으나 선교지역을 잘 이해하기 위한 것들을 배울 필요는 있다. 나라의 이름들을 암기하며, 그 위치, 가족 구성원, 종교의 구성, 복음의 장애물, 핵심적인 기도제목 등. 각 나라에 따른 최소한 1가지 이상의 사역의 유형을 분석하고 신문의 여러 가지 뉴스를 통해 확인하라. 5.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 세계에 대한 모든 정보, 특별히 뉴스를 이용해 매일의 기도에 활용하라. 그리고 "세계 기도정보"(Operation World.)와 같은 자료들을 활용하라.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묵상과 기도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6.최소한 한번 이상의 단기 선교에 참여하라. 최소한 한번 이상의 다나기 선교여행에 참여하라. 예를 들어 "기도여행", "병원선교" 등. 선교 사역지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곳으로 선택하라. 7.선교에 관심이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라. 함께 선교에 대하여 기도하며, 서로가 갖고 있는 정보들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라.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룹이 알고 있는 선교사를 도울 수 있는지를 논의하라. 8.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 선교부가 어떤 사역을 하는지를 확인하라. 교단 선교부의 선교소식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라. 그러나 모든 교회들과 선교회들의 자료를 접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선교 동참 기회가 있는지를 비교 분석하며, 자신의 교회에 선교에 대한 행사와 보고회를 계획하며 다른 성도들이 선교에 대하여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라. 9.선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사람들을 모아 기도회를 구성하라. 세계 선교와 구체적인 나라, 혹은 사역을 위한 매월 정기적인 기도모임을 만들며, 그리고 교회와 교단이 앞으로 어떤 사역들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라. 그리고 그들이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격려하라. 10.선교의 꿈나무들인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하여 도전하라. 우리는 자주 선교사는 성공을 위한 작은 선택과 함께 직업 선택에 있어서 두번째에 속한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실수들이다. 우리는 모든 방법으로 선교에 대하여 중요한 장기 선교사가 될 어린 아이들 격려하며 지도해야 한다. 특별히 최소한 단기 선교프로그램에 참여케 함으로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실제적인 점검 실제적으로 전 세계 소년들의 60%가 복음전도와 어떤 모습의 선교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활동적인 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많은 청소년들을 선교에 연결시켜야 한다. 이 목록을 활용하던지 혹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이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통한 경험을 기반으로한 유사한 목록을 만들어 활용하라. 친구들에게 복음전도의 필요성과 긴박성을 함께 나누라. 제안 1. 당신의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목록들을 실천하라. 2. 이 목록을 당신의 교회 기도제목에 올려라. 3. 포스터를 만들고, 그레픽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라. 4. 이 목록에 다른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교회의 다른 성도들에게 도전하라. 5. 잡지나 소식지에 위의 목록을 실어라. 6. 이 목록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라.

  • '선생' 이라는 말의 헬라어나 라틴어의 의미는 '헐뜯는 눈초리로 남을 내려다보는 사람' 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선생의 위치에서 우월 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고 자신이 모든 일의 판단기준이 되어 모든 사람이 자기의 뜻에 동의해주어야 만족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미 1세기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 안에 나타난 이런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의 하나됨이 흐트러지고 말만 앞세우는 가식적인 믿음이 다른 형제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고보는 성도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어린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서 자기 삶에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성숙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일수록 자기책임에 민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한 성도로서의 책임,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리차드 니버(Niebuhr)라는 신학자는 인간을 '책임적 자아'(the Responsible Self)로 정의했습니다. 영어에서 책임이라는 말 'Responsibility'는 Response 와 Ability 라는 말이 합해서 이루어진 단어로 책임이라는 말은 즉 '응답할 수 있는 능력' 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예' 하고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응답합니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남의 눈의 티를 보기보다는 자기 눈의 들보를 보는 사람입니다.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의무를 강조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불평하기보다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보다는 적극적인 말, 긍정적인 말, 생산적인 말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 새벽기도

    새벽기도는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새벽미명에 예수님도 기도하셨고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이미 새벽을 만들어 놓으셨다 사람을 만들어 만드신 해를 보게 하셨고 하루를 열어가는 시작을 알리셨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른 아침이라고 하시면서 새날 새 생명의 의미를 주셨다 새 하늘과 새 땅 모리아 제단으로 가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얍복강가에서의 천사와의 싸움 홍해가 열리는 기적 여호수아가 이끄는 백성들의 요단의 도하작전은 물론 여리고 성의 붕괴 구약과 신약에 걸처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새벽에 일어났다 15년 전의 New York의 중심부 맨하탄에서 가까운 Greenpoint Ave. Sunnyside에 서광교회가 설립된다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며 할 수 있어 시작한 목회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새벽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타워가 되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 한 두 가정 모여들다 보면 어느덧 기도의 소리로 가득찬다 그로부터 어느 날 Nyskc라는 이름이 세워지더니 예배회복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특별새벽기도회가 만들어지더니 그것이 13년동안 계속된 것이 42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산술적인 것일 뿐 의미는 없다 그 이유는 사실 이 보다 더 많은 기도의 시간을 갖었으며 그 수는 셀 수가 없다 그저 대략적인 수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신년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사순절기 중에 있다 그리고 6월에 Conference를 위한 기도회 7월에 창립기념예배를 위한 기도회 10월에 지교회창립기념예배등 이렇게 일 년이면 5번에서 7번을 행한다 어디 이뿐이랴 각 부서별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기도회를 갖는다 그러나 제 42 차라는 것은 숫자일 뿐이다

  • 영적전쟁을 위한 10계명

    목회는 영적전쟁 그 자체이다. 영적전쟁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며 시대적 소명이며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다. 전도와 교회성장과 세계복음화는 영적전쟁의 결과이다. 영적전쟁으로서 목회를 위한 십계명은 무엇인가? 1. 세계관을 바꾸라 마음과 생각 즉 세계관은 영적전쟁의 가장 치열한 싸움터이다.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만 말하는 기능적 이신론에서 탈피하여 중간세계 즉 천사와 사탄의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으로 무장되어야 영적전쟁이 가능하다. 2.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 영적전쟁에서는 능력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사탄과의 싸움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도우시는 관계없이는 백전백패일 뿐이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가까이하고 마음과 손을 깨끗이 하는 거룩과 순결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3. 전투적 기도에 들어가라 마귀를 대적하고 내어쫓는 명령형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영적전쟁이다. 기도는 전투 그 자체이다. 4. 중보기도 특공대를 조직하라. 영적전쟁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 여호수아가 이긴 것은 모세와 아론과 훌의 협력적 중보사역때문이다. 목회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기도를 가장 많이 받아야 하는 자이다. 어떤 교회든지 출석성도의 10퍼센트 이상은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자이다. 5. 영적전쟁에 대해 가르치라 영적전쟁의 최대 장애물은 무지이다. 싸우기 전에 먼저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하면 두려움의 포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려과 마귀의 실상과 영적전쟁의 방법의 대해 교육하라. 6. 성령운동에 동참하라 영적전쟁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삶의 통치권이 성령에게 있는 사람, 즉 성령충만한 사람은 승리를 보장받는 사람이다. 성령운동은 어느 교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교회의 본질 그 자체이다. 7. 지역사회를 영적으로 도해하라 영적도해 (spiritual mapping)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목회의 대상지역을 철저히 연구분석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는 영 (territorial spirits)을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것 만큼이나 중요하다.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하기 때문이다. 8. 비난과 축복을 지혜롭게 극복하라 영적전쟁의 적은 사탄만이 아니다. 내부의 비난과 핍박이 더 강력한 장애물일 수 있다. 예수님도 똑같은 일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비난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적극적으로 그러나 지혜롭게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료하고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9. 다른 동역자들과 연합하라 하나님이 영적전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바로 순결과 연합이다. 분열은 사탄의 진을 강화시키고 연합은 성령의 진을 강화시킨다. 영적전쟁의 제 1원칙이 성령과의 연합이라면 제 2원칙은 사람과의 연합이다. 다른 교회와 동역자들과 최선을다해 연합하라. 연합 그 자체가 승리이다. 10. 성경적 균형을 유지하라 마귀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것을 마귀의 역사로 단정하는 것도 패배로 이끄는 함정이다. 성경과 성령과 교회와의 조화를 추구하라

  • 안락함에서 나오라

    존 오트버그의 "물 위를 걸으려면 단순하게 믿으라" 라는 글을 보면 단순하게 살고 안락함에서 벗어나라 하는 글들이 나온다 우리는 안락한 세상을 추구한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지나가시며’ 모든 것을 뒤흔드신다. 배 밖으로 나오라는 부르심에는 위기, 기회, 실패, 두려움, 고통,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벅차 보이는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믿음을 성장시키고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려면 다른 길은 없다. 당신도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거절과 희생을 의미할지라도, 봉사와 대가를 의미할지라도, 심지어 실패의 가능성을 의미할지라도 모험을 감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은 배 안에 머무른 지 오래일 수 있다. 당신은 푹신한 의자에 안전 장치도 있는 매우 좋은 배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폭풍이 쳐도 절대 뱃멀미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배에 있는 것이 아주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주님이 지나가고 계신다! 예수님은 아직도 배 밖으로 나갈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러나 배 밖으로 나간다면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밖에는 폭풍이 이는데 당신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에는 항상 실패의 가능성이 따른다. 그럼에도 당신이 배에서 나간다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첫째, 실패하면 예수님이 구해 주실 것이다. 즉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님이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따금 한 번씩 물 위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자, 그러니 이제 믿음의 일을 해보라. 우선 배 밖으로 나가라.

  • 탐욕

    열왕기하 5장 27절 성경에서 문둥병은 죄의 상징입니다. 죄를 치유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방법에 순응했을 때 문둥병이 나은 것처럼 죄의 사유함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때 해결됩니다. 반대로 게하시의 탐욕이 죄를 범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그 굴레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탐욕은 죄의 종이 되게 만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나비가 펄럭거리는 이유는?

    (Why a butterfly flutters by) 당신은 나비의 펄럭거리는 비행 모습으로 인해 나비가 원시적(primitive)이고 비효율적인 비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비의 날개는 새(birds)나 비행기의 아름답고 유선형의 날개와 비교해볼 때 공기역학적으로 매우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10년 전만 하더라도, 공기역학에 관한 통상적인 법칙들은 이들 나비들이 어떻게 날 수 있는지, 그리고 홀로 그렇게 낮은 속도를 뽐내며 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1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연구자들은 이들 나비들이 공중에서 머물기 위해서 통상적이지 않은(unconventional) 비행 방법으로 그들의 날개를 사용하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면, 한 번의 특유의 펄럭임은 날개의 끝을 따라 나선형의 공기흐름(spiralling airflow, vortex)을 만들고, 이것은 종래의 안정상태 공기역학(steady-state aerodynamics)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약간의 들어올림(lift)을 일으킨다.3 ‘바람 터널(wind tunnel)‘ 안에서 붉은 대장 나비의 비행을 촬영한 후에, 연구자들은 이제 간단한 펄럭임이 전 범위(range)의 복잡한 날개 운동(포획물 쫒기, 두 형태의 나선회전, 활발한 또는 활발하지 않은 위로 젖힘, 회전 메커니즘의 사용, 가볍게 양날개를 치고 뻗기 (Weis-Fogh “clap-and-fling”))으로 되어있고, 이것은 더 많은 들어올림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의해서 놀라게 되었다.4 더욱 놀라운 것은 붉은 대장 나비는 연속적인 날개 짓에서 자주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원시적이었다고 생각했던 나비의 펄럭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비는 각 날개 치기를 선회, 퍼덕거림, 펴서날기, 흔들기 등에서 사정에 맞추어 준비된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비의 펄럭거림은 무작위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산만한 흔들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넓은 날개의 공기역학적 메커니즘에 정통한 결과라는 것이다.4 나비들은 이륙하고, 선회하고, 안정적인 비행을 유지하고, 착륙하는 데에 너무도 숙달되어 있었다. 항공 엔지니어들까지도 이러한 메커니즘을 복사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스파이 곤충 로봇을 제작하는 데에 응용하고자 한다.5 그러나 곤충들의 비행 능력을 따라잡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6 예를 들어, 사람이 만든 비행체의 소프트웨어의 설계에는 수년에 걸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그것의 완성을 위한 강력한 컴퓨터 칩(chips)들을 필요로 한다. 비교해서, 한 마리의 파리(fly)의 뇌에 있는 비행 중추는 대략 3,000 개의 뉴런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매우 작은 컴퓨터 신호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곤충들은 극도로 빠른 디지털 전자 장비를 갖춘 비행체보다 더 민첩하다.7 그러면 어떻게 곤충들은 여러 곡예비행 능력을 조절하도록 훈련되어졌을까?8 한 논평가는 “만약 엔지니어들이 그것을 일찍이 이해했었다면, 항공공학에 혁명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7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한 엔지니어가 계신다. 그 분은 처음에 이 놀라운 비행 방법을 만드셔서 입력시키신 분이시다. 그 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SECTIONS

SKBTV

SITE

  • 인스 타 그램 - 흰색 원
  • 페이스 북 - 흰색 원
  • 유튜브 - 흰색 원
  • 트위터 - 흰색 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