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란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창세기 11장 바벨탑의 언어는 폭력과 착취의 언어이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수단화하는 욕망의 언어다.
참 언어가 아닌 거짓된 언어, 거짓된 교제, 거짓된 만남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며, 그들의 교제는 탐욕을 채우기 위한 교제였으며, 그들의 결탁은 하나님을 추방하려는 불경건한 것이었다. 마치 가룟유다가 제사장들과 은 스무냥에 결탁한 더러운 결탁이었다.
그들의 모든 것에는 ‘꼼수’가 있었다.
그들은 참된 생명의 언어를 잃어 버렸다. 땅의 언어만 남고 하늘의 언어를 잃어 버렸다. 식상하고 폐쇄된 죽은 언어들만이 온땅에 널부러져 있다. 우리는 참된 언어를 잃어 버렸다.
선교는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
탐욕으로 물든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언어, 사랑의 언어, 생명의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성령 강림절에 설교하면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고 타인을 수단화하는 욕망의 바벨탑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향하여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베드로의 강청은 그 옛날 바벨탑 운명 속에서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부름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의 부름이며, 창조적 언어였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창조적 언어요, 참된 생명의 언어이자 근원이다.
이제 꿈꿀 수 있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능력의 언어이다.
주님은 온 세계와 열방 가운데 오직 존재의 이유가 되시며,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언어이시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바벨 공동체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서로 합했다면, 생명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타인들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한다. 주님의 오심은 바벨 공동체 안에 욕망에 찌들린 우리들을 욕망의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어 생명의 광야로 보내신다. 소외되고 버려진 광야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명의 언어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