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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테러 어느 생존자의 간증
인도사람인 수조 존 씨가 신앙간증을 한 내용입니다. 내가 일하던 방은 자유의 여신상이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당일 오전 8시 48분, 팩스문서를 보내던 순간 첫 번째 비행기가 사무실 바로 윗 층에 충돌했다 건물이 크게 흔들리면서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쏟아졌다. 사태를 파악하고 수십 명의 직원들과 함께 황급히 계단으로 53층까지 내려가 남쪽건물에서일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이 없어 기도를 하며 계속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다른 폭음을 들었다. 남쪽 건물에 비행기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무역센터를 벗어나는 회전문에 이르렀을 때 남쪽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와 함께 벽 쪽으로 쏠려 기댄 사람들에게 말했다 "만일 여러 분이 지금 주 예수님을 알게 된다면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의 피'를 찾으며 다함께 "예수, 예수, 예수!"하고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요란한 굉음이 울리면서 몇 톤짜리 건물 파편들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주님, 전 이제 하늘나라로 갑니다. 기왕이면 좀 가벼운 게 떨어지게 하소서" 라고 빌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쓰레기 속에 파묻혀 있었고 자옥한 먼지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숨져있었다. 함께 곁에서 쓰러진 FBI수사관 (조셉 밸리큇)만 나와 함께 살아 남았다. 죽기 전 주님을 찾던 그들은 지금 모두 하늘나라에 있는 줄 믿는다. 벨리큇 수사관과 함께 손을 잡고 번쩍이는 붉은 빛을 따라 간신히 밝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깔려 찌부러진 앰뷸런스에서 나온 그 불빛은 하나님이 비추신 등대 같았다. 밸리큇은 생존한 부상자가 더 있는지 살피러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FBI 전언에 따르면 그는 잠시 후 숨졌다.) 갑자기 휴대폰 소리가 나기에 놀라 받아보니 그때쯤 이미 하늘나라로 들어 간 줄만 알았던 아내가 "여보, 살아 계세요?"라고 물어왔다. 과연 예수 이름밖에는 우리를 구원할 이름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나만이라도 살아남은 이유는 현재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장차 올 죽음을 준비시키기 위함인 것 같다. 여러분은 죽음 후 어디로 가는지 알고있는가.
- 하프타임
"나는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한다. 원하던 집도 장만했고 건강도 좋아지고 먹고사는데 불편이 없고 남편도 아이들도 건강하고 하는 일도 그럭저럭 잘되고… 하루하루 평안함을 느낀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은 탐심이며 죄악같이 여겨진다. 나와 같은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많아 오히려 죄송하리 만큼 자족함을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좋다. 그러나 원하던 위치에 왔는데도 그 이면에는 답답함이 있다. 하루를 정리하는 늦은 저녁 나는 생각한다. 거의 매일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일이 나와 내 가정에 집중된 삶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투자는 아주 적다. 간혹 공허함이 느껴져서 정말 인생이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염세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닐텐데… 조금은 잘못 된 것 같다. 밥 포드의 말처럼 나의 인생을 점검해볼 필요를 느낀다. 나의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복음을 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극에서 극으로 옮김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중심을 이동하는 것이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효과적인 후반기의 삶을 위해 배움도 찾아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일속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아직도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에 지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덧없어 보인다. 마음을 비우고 참된 나를 성령을 통해 조명 받아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다.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고 싶다. 내 아이들은 좀 더 하나님 중심의 점진적인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키우고 싶다. 나의 부족함과 실패를 닮지 않게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 생각해 봐야겠다. 그래서 작은 목표를 하나씩 세우면서 큰 일을 감당하는 자로 훈련되고 싶다." 열매는 씨를 뿌리고 오래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믿음의 열매도 역시 오래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인데 그것이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열매가 믿음의 열매이며 믿음의 열매가 곧 감사의 열매인데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새 생명을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다리시는 하나님
기다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끝이 안 보이는 기다림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절망을 지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하여 질그릇을 금그릇 되게 하십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잘 기다리게 하는 힘이며 뿌리깊은 거룩이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실패는 기다림의 실패이며, 신앙실패의 원인 중에 하나는 조급함에 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당장 이루라' 재촉하며 충동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족과 미숙을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의 덜됨과 철없음을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향하신 기다림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10년, 20년...을 끈질긴 사랑으로 기다려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지체들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하심에 대하여 한 달을 길다 합니다. 1년 앞에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기다림의 은혜를 베푸시는데, 우리는 부부, 자녀, 친구, 팀원, 동료, 교우, 이웃...에 대하여 기다림에 너무 인색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로 인하여 늘 마음이 눌려 있고 상해 있습니다. '왜? 저 모양인가...' '왜? 저렇게도 안 변할까...' '왜? 아직도 그 수준밖에 안되나....' 이런 넉두리와 한숨 속에는 내 자신에 대한 교만과 다른 지체들에 대한 조급함과 경시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다려줍시다. 주님이 나를 기다려주고 계시듯.... 평생이라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하지 말고 마냥 멍청하게 기다리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형제의 모습이 내 모습이며, 내가 그토록 속상해 하는 다른 지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의 마음도 이러하실 터인데...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왜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냐? '왜 그렇게 성화 되지 못하느냐?' '왜 그렇게 아직도 그대로냐?'고 한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멘으로 받고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극심한 조급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러했듯이 말이죠. 당장 마실 물을 달라 합니다. 당장 고기와 먹을 것을 달라합니다. 안주면 돌아간다 합니다. 이것이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실존형상 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당장 응답하시라 보챕니다. 하나님의 때를 앞 당기라 떼를 씁니다. 왜, 이렇게도 더디냐고 따집니다. 조급함의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마귀는 우리의 조급함을 배후에서 충동하고 조종합니다. 우리를 견딜 수 없이 조급하게 하는 사단을 대적하십시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렸듯 야곱이 21년을 기다렸듯 모세가 80년을 기다렸듯 요셉이 13년을 기다렸듯이....(나중에는 기다림 마저 포기하게 하심) 가족에 대하여 남편에 대하여 아내에 대하여 자녀들에 대하여 포기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기다리되 투덜거리지 말고 잠잠히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10년이고 20년이 지나면 달라지리라 기대하십시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당장 포기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람은 몽둥이와 잔소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기다려 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변화속도 만큼 남도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기다리게 하실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기다림을 통하여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깨뜨리시기 위함입니다. 기다림처럼 우리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깨뜨릴 방법은 없습니다. 끝을 모르는 기다림은 죽음을 방불케 합니다. 그 기다림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교만은 부셔지고 자아는 죽고 속 사람의 찌꺼기는 걸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아시고 치명타를 아십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빨리 깨어지고 쉽게 항복하는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부분을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얼른 포기하십시오. 얼른 항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은 곧 행복의 시작이자 회복의 시작입니다. 기다림이 힘든 것도, 포기하기 어려움도, 불평과 원망이 들끓음도 사실은 나의 못난 자아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다림과 하나님의 기다리심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를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기다림보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더 속히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야곱의 험악한 인생이 속히 청산되기를 기다림보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을 빨리 '평안인생'으로 바꾸어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응답은 야곱이 지렁이 같이 되고서야 이루어지게 되었고 야곱의 기다림은,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나를 찌르고 격동케 하고 나의 인생에 막대한 손해를 입혀 억울하게 한 그분(?)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 기다려 주십시요. 그 때문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의 고생도 큰 것입다. 마치 요나가 탄 배 때문에 뱃사람들이 함께 고생했듯이 말이죠. 나를 힘들게 하는 그분의 수고와 노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도 그로 인하여 힘들지만, 그 또한 나를 인하여 힘들지요. 결국, 나를 나되게 하고 철들게 하고 온전케 하고 성숙케 할 사람은 나를 칭찬하여 주고 극진하게 섬겨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쉬지 않고 격동시키는 그분(?) 뿐입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준비케 하시는 놀라운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배려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행복인생'은 항복으로 다가오며 '평안인생'은 기다림의 승리로 찾아오며 기다림의 끝은 나의 깨어짐으로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만큼 깨어져야 합니까? '이 정도면 되었지 않느냐?' 라는 생각조차 안들 때까지.... 얼만큼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 기다림 마져 포기될 때까지..... '기다리라' 하심은 하나님의 필연적인 섭리이며, 나를 나되게 하시는 기막힌 은혜입니다. 그냥...막연히....기다리시면 안됩니다. 기도하며, 은혜 받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침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 애가 3;25-26)
- 미클랏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이라는 프랑스의 단편 소설가의 작품 중에 『진주 목걸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틸드’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서 한 하급 관리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무도회의 초청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무도회에 가게 된 마틸드는 너무나도 기뻐했지만, 기쁨도 잠시 막상 무도회에 가려니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남편이 애써 저축한 돈을 다 찾아 화려한 옷을 사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자 친구를 찾아가 진주 목걸이까지 빌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무도회에 참여하였고 마틸드는 그 무도회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이 한 몸에 쏟아졌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마틸드는 그만 너무나도 놀라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빌려온 진주 목걸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마틸드는 목걸이 값을 장만하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목걸이의 값은 모자랐고, 끝내 큰 빚까지 지고서야 목걸이를 살 수 있었고 그렇게 진주 목걸이는 부자 친구에게 되돌려 졌다. 그로부터 10년간 이들 부부는 빚을 갚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10년 만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산책길에서 예전에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너무나도 초췌하게 변해버린 마틸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마틸드는 마지못해 10년 전 빌렸던 진주 목걸이의 값을 치르느라고 이렇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 가엾은 마틸드, 왜 진작 그 이야기를 내게 해 주지 않았어.... 그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몇 프랑 안 되는 싸구려 장신구였단 말이야.....” 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엎드려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마틸드는 엉뚱한 것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현대인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큰일 날 줄 알지만, 그래서 그것에 목매고 집착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없어도 되는 것,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집착해서 끝내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꼬집고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이 소설에서 그녀의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고 망가뜨린 것은 무엇인가?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남편이 부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고 괴롭힌 것은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가지 않아도 될 무도회에 집착하고, 입지 않아도 될 의상에 집착하고, 걸지 않아도 될 목걸이에 집착해서는 끝내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 버린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남의 눈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목걸이를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의 자존심, 아니 그것은 오히려 열등감이라고 불려야 마땅한 것인데, 그 열등감의 정체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욕심을 내다가 다시 그 욕심에 사로잡히고 마는 그녀 자신의 집착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괴로운 건, 갖고 싶어 하는 그것이 지금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자체이다. 그것을 가리켜 욕심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 무언가 부족한 것, 예컨대 재산이니 지식이니 명예니 건강이니 외모니 하는 그런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정말은 욕심이라고 하는 내적인 것이다. 욕심이야말로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다. 욕심이 없으면 인생은 행복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욕심에 집착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인생은 철저하게 망가지고 부서지고 만다. 그런데 욕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욕심에 사로잡혀 살면서도 그것이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진주 목걸이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몰랐던 마틸드처럼 인생의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살면서도 그것이 욕망과 욕심이 가져다주는 환영과 환상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욕심은 때로 그 모습을 바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또 때로는 염려와 걱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이번 시험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공포가 마틸드의 가짜 진주 목걸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얽어매고 힘들게 하며 괴롭히는 것이다. 실패하면 하는 거지.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그런다고 달라질게 뭐 있나 말이다.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사계절은 순환하며 물은 달고 밥은 맛있지 않은가 말이다. 삶은 성공한 사람들만의 것도 아니고 행복은 결코 성적 순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집착하는 그것, 그것이 삶을 망치는 주범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집착의 끈으로 얽어매는 그것, 그것이 정말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정말 살기 힘든 곳이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이고 밤이면 차가운 영하의 날씨로 얼어붙는 그런 곳이었다. 얼마나 메마른지 풀 한포기도 자랄 수 없는 곳, 그저 바람과 먼지만이 휘날리는 죽음의 땅, 높고 높은 산들이 가로막혀 있는 그런 곳이 광야였다. 바로 그 메마른 광야를 여행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여행을 하는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성전을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먼 곳에서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인 모양이다. 게다가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더구나 시인이 가야할 길에는 높고 높은 산들이 가로막혀 있다. 이스라엘의 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산이 아니다. 사도바울이 넘어 다녔던 타우르스 산맥에는 해발 9,000ft 가 넘는 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세가 10계명을 받았던 시내산의 높이 역시 6,900ft 미터에 달하는데 그 주변의 산들은 대부분 시내산 보다 훨씬 넘는 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단강의 근원이 되는 헐몬산은 4,400 미터가 넘는 산이다. 광야는 험난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으면서도 높다. 그런 산들을 넘어 예루살렘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첫 구절은 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여기서 말하는 산(헤하림, ההרים)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즉 그냥 산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들이 겹쳐 있는 ‘산들’을 말하는 것이다. 넘어야 할 그 많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온 몸에 힘이 쫙 빠진다. 그 많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저걸 어떻게 넘나, 누가 나를 도와 저 산을 넘게 하려나....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편 121편에 등장하는 자연은 모두가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의 상징이다. 낮의 해도, 밤의 달도 다 힘겹고 괴로운 환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 광야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힘겹고 두려운 것들뿐이다. 그래서 힘겨워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다시 고쳐먹는다. 그의 눈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넘어 그 산들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산은 저 혼자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그 산을 거기에 만드신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태양이 저 혼자 떠서 뜨겁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태양을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산이 두렵지 않다. 뜨거운 태양도, 차가운 달도 두렵지 않다. 그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한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산을 만드시고 해를 만드시고 달을 만드신 여호와... 내 인생을 만드시고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불꽃과 같은 눈초리로 우리를 감찰하시며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 바 되시는 여호와... 나의 아버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순간, 산들이 주는 공포에서 해방된다. 그 놀라운 감격을 가지고 이렇게 외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 바깥에 있지 않다. 그분이 바로 나를 지키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것도 한 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지키신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살다보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런 순간 말이다. 꼼짝없이 넘어질 것만 같고 넘어졌다가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문제라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하시고자 하신다면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천지만물을 만드신 분이시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작고 작은 손바닥이지만, 그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손을 떼고 보면 그건 그저 작은 손바닥일 뿐이다. 문제가 내 눈을 가리면 그 문제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 것이 인생이다.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집착해서 10년 세월을 허비한 마틸드처럼, 우리 역시 인생의 문제에 직면하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 문제에만 집착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그건 정말 힘겨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의 눈이 그 산을 넘어 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시인은 아예 산을 넘어 해를 바라보고, 달도 바라본다. 그러나 하나님을 발견한 그에게는 이제 해도 달도 걸릴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다. 사업상 큰 어려움에 처한 그는 절망 가운데 빠져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는 돌아갈 길도 없는 큰 산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도 막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웨슬리는 그 말을 다 들었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였다. 웨슬리는 그저 묵묵히 그 사업가와 함께 잠시 동안 같이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그렇게 걷던 그들 앞에 목장이 하나 보였다. 목장 안에는 소들이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목장 한 쪽으로 긴 돌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도 여전히 소들이 있었는데 담장이 가로막혀 있자 담장 밖을 보기 위하여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웨슬리가 말했다. “저 소들을 보십시오. 저 소들이 담장 곁에서는 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겠습니까?” “그야 담장 밖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사업가의 이 말에 웨슬리가 다시 말했다. “그래요. 인생도 앞을 볼 수 없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산이 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가?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막막한 문제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누군가 도와주어야 할 텐데,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가? 그건 내 삶이 욕심과 두려움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슬들에 얽매여 있기 때문일 뿐이다. 가짜 진주목걸이에 사로잡힌 마틸드처럼, 그렇게 세상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것이고 괴로워하는 것일 뿐이다. 앞이 막혀 보이지 않는다면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산이 막혀 두렵다면 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이 되자. 뜨거운 땡볕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내 우편의 그늘이 되어 주신다. 차가운 달빛에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천지에 그분께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가져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너무나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나 혼자서는 10년을 갚아도 다 못 갚을 진주 목걸이가 그 주인에게 가니 1분 만에 해결되었다. 내 힘으로는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산들도, 견딜 수 없는 낮의 해도, 밤의 달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문제가 되지를 않는 법이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라. 산이 아니라 산을 만드신 분을 보라. 거기에 해결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만족이 있을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칼빈의 5대 교리
1.전적부패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1-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17::9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요일1:8,10 2.무조건 선택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11:2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8-30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갈라디아,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벧전1:1,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4,5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9:16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13:48 3.제한속죄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요10:11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9:1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4.불가항력적 은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쫒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엡2:8,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롬8:30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9:1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2,13 5.성도의 궁극적 구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10:27-30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31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뉴욕 찬송 302 고센 찬송 245 말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자 ( Readeth, Hear the Words, and Keep. )
- 미클랏(뉴욕)
예수 믿으세요 (요 12:44-50) 1.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위임 즉 맡기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그대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서 만백성의 구원자로서의 메시야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임하셔서 모든 사람을 섬기시고 봉사하시는 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본래 하나님이시지마는 완전한 사람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로서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말씀, 빛, 생명, 어린 양, 인자, 그리스도 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셨던 분으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며, 하나님께 속한 분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절) 빌립이 이렇게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2.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어둠의 세상이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을 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참 진리의 빛이 없었습니다. 사망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빛이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미움과 자기만 잘났다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서로 갈등하는 세상 속에 진정한 사랑의 빛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안에 가하는 사람은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7-48) 예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께서는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이시며 빛 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빛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46절) 우리가 언제 빛의 자녀가 됩니까? 선행을 통하여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순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는 적어도 3가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과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됩니다. 셋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의 최고의 은혜와 영광은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47절)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진리와 사랑과 생명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미클랏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금세기 갑부 16인’에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서 알려진 록펠러(839-1937)가 1위이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억만 장자가 록펠로 혼자 뿐이었으며 일주일 수입이 1백만 달러나 되었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는 어릴 때부터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다음의 10가지 교훈을 철저하게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 안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미클랏
1. 기도 없는 경건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다. 2.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다. 3.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영적인 낮은 포복이다. 4. 기도자가 피해야 할 교만은 기도 많이 한다는 교만이다. 5.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 사상, 그리고 사역에 감화되어 하나님께 설득되는 것이다. 6.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자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7. 기도자는 바른 기도를 통하여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점점 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바뀐다. 8. 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인생 청사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9.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집을 짓는 벽돌이다. 10. 기도는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11. 기도는 세상적인 욕심의 발전소가 아니라, 소방서이다. 12. 기도가 없을 때에 마음은 세상 것으로 무거워지고, 기도가 있을 때 마음은 성령과 하늘의 것으로 충만하다. 13. 기도는 언뜻 보면 좁은 길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넓은 길이다. 14. 기도는 우회도로처럼 보이나 실상은 지름길이다. (요령, 약삭빠름, 잘남보다 더 빠르다). 15. 세상에서 가장 줄을 잘 서는 방법은 기도이다. 16. 세상의 성공에는 후유증이 있으나 기도에는 후유증도 뒤탈도 전혀 없다. 17. 세상의 모든 후원에는 용수철처럼 조건이 달려있지만 (string-attached), 기도에는 기도자를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 다는 용수철이 달려있다 (God-attached). 18. 기도 자체는 무능이나 하나님은 기도의 무능을 통해 전능전지의 역사를 하신다. 19.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20. 기도 없는 곳에 사람만 일하고, 기도 있는 곳에 하나님이 일한다. 21. 기도는 노력 더하기 노력이 아니라, 나의 노력 곱하기 노력이다. 22. 기도가 없는 곳은 사탄의 잔칫집이고, 기도가 있는 곳은 사탄의 초상집이다. 23. 기도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이다. 24. 기도는 예수님을 닮는 최상의 방편이다. 25. 기도 여행의 목적지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26. 기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7. 기도는 노동절약 장치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28.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할 삶과 기도의 내용은 같다. 29. 하나님께 감동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할 때 기도는 중언부언이 된다. 30.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기도자는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
- 미클랏
위험에 처했을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외롭거나 두려울때 시편 23편으로가세요 신앙인으로써 확신이 필요할때 로마서 8장 1절에서 30절로 가세요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30절로 가세요 죄를 지었을 때는 시편51편으로 가세요 근심이 있을때에는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34절로 가세요 괴로움과 위기 안에 있을때에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풀이 죽어 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것 같을 때에는 로마서 8장 31절에서 37절로 가세요 일이나 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을때 시편121편을로 가세요 투자할일이나 돌려줄 일이있을때에는 마가복음 10장으로 가세요 믿음의 발동이 필요할 때는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세요 좁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도할때는 시편 67편으로 가세요 슬플 때에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사람이 실망시킬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때는 시편 139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하나님 보다 위대하게 보일때는 시편 90편으로 가세요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의기소침할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세상이 작아보이고 자신은 커보일때 시편19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갈때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돈이 없을때에는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사람들이 불친절 해보이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내가 한 일에 낙심될때 시편126편으로 가세요 바울의 행복의 비밀은 골로새서 3장12절에서 17절로 가세요 기독교의 관념에 대해 고린도전서 5장15절에서 19절로 가세요 아주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사야55장으로 가세요 다른사람과 잘 지내려면 로마서 12장으로 가세요
- 미클랏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 때문에 지신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 하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젼은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죄인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후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스스로 나의 죄를 담당하시므로 스스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지신 것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십자가에서 3시간에 걸친 무서운 어둠을 견뎌내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을 골고다 언덕에 흘리시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죄 값은 다 지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로 이 소망! 이 구원의 소망 때문에 예수님은 캄캄한 고독과 절대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심판과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한 몸에 지고 그 아픔을 견디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여야만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값은 다 지불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께 믿음으로 연합된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을 바로 볼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벧전2:24b -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더 이상 죄는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 하늘가는 밝은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을 모를 때는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예수님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삼상17:31-40 주의 종이 가서 싸우리이다 주일예배 막14:27-31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찬송 399장 And Jesus saith unto him, Verily I say unto thee,
- 미클랏
이탈리아에 어느 부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취미는 비싼 옷을 입고 밤마다 이 파티에서 저 파티로 , 전전하며 술과 놀음과 여인들 사이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녁이면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인들의 집집마다 창문 아래서 세레나데를 불러대고는 또 술을 퍼 마십니다. 그에게 유일한 꿈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에 나가 싸워 유명한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약했기 때문에 그 꿈마저도 물거품이 되 버렸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심한 열병에 걸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그의 귀전에 낯선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왜 너의 삶의 주인을 따르고자 하지 않느냐?” 그는 정신이 번쩍 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십자가 형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그 날의 새벽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보면 웃기 시작했고, 실제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고 묻자, 그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의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사랑이요, 나의 전부입니다” 라고 증거하며 다녔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의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이 사람이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아씨시의 성자 프랜시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예수님이 너무나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 희생은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 크신 사랑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으셨다면, 당신은 이 크신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어떤 걱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주님께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신앙을 가지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 그래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날마다 드려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미클랏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그 얼굴 흉측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 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안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 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 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어머니의 감동적인 사랑을 봅니다. 이 어머니라고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을 기꺼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가운데 가장 숭고하고 값지고 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값지고 숭고하고 가장 귀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일까요? 성경은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왜? 귀중하고 값진 사랑이신가? 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크시고 놀랍고 숭고한 사랑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벧전2: 22 -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