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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02개 검색됨

  • 봄이 오지 않아도 행복하다

    어느덧 성큼 다가온 이 계절 날은 추운데 햇빛이나 온도는 확연한 봄이다 지난 몇일 전 뉴욕의 고층건물들이 얼었고 도로와 사람들도 꽁꽁 얼어버린 도시였다 거리의 모든 것들이 앙상함을 드러내며 빈 택시와 승객 없는 버스들로 한가롭게 오갈 뿐 생기 없었다 거스릴 수 없는 운명적 계절이날까 허나 무엇으로 역전시켜 이 보다 더 깊은 생명을 불어넣어 바꿔 놓을까 봄이겠지 봄이 오면 모든 것에 은혜을 불어넣겠지 얼었던 것이 풀리고 묶였던 것들이 자유하리라 세대마다 철저하게 묶어놓은 철의 밧줄들 팽팽하다 못해 끊어지기 일보직전에 놓여던 것들 아슬아슬한 시간의 다리를 건너며 먹고 마시며 취하여 떨어져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느냐 객기를 부리며 얼음 속에 뭍었던 운명적인 것들 봄이 오면 다 풀리겠다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계절의 변화는 소망이다 하지만 겨울 물새처럼 얼음물 속에서 퍼덕이며 비상한다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 명품인생

    찐 고구마도 나름 맛있지만 군고구마의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똑같은 고구마라도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훨씬 더 향기롭고 깊은 단맛이 나는 거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고통과 시련의 불을 통과해야 명품의 인생이 된다 불같은 시험을 경험하였나 풀무 불에 던져진 체험이 있었나 환란과 고난 어떤 형태의 고초라도 불같은 시험에서 기도하며 견디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주님만이 열수 있습니다

    열린 듯 막힌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열려 있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답답하리만큼 막혀 있네요 내 주변 이웃들을 보면 열린 듯하여 대화해 보면 장벽 앞에 서 있는 듯 소통 부재랄까 막힌 듯하여 교제가 힘드네요 눈 뜨면 열린 듯 막힌 듯한 세상에서 행성 같은 별들이 막힌 세상을 탈출하자며 뛰어보지만 우주 범주에 있을 뿐 넘어서면 실종 더 열린 곳으로 가겠다면 미아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막장까지 이르게 되지요 아담의 불순종 아브라함의 모리아 제단 모세의 홍해 바다는 막힌 듯 하였으나 열린 문이 되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었지요 막힌 듯 열린 듯 조마조마 아슬아슬 삶에 장벽 막힘과 열림 사이에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니 열려가네요.

  • 오직 성령으로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도 아니되고 하나님의 신으로만 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만이 영 입니다. 구령사업이나 교회나 주의 종들이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Invisible God)이 보이는 하나님(Visible God)으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까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케 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여 주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여기 머물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보혜사(Com+forter) 곧 능력이 함께 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살게 됩니다. 성령 강림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 역동적인 교회의 부흥 죽은 자가 살아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한 지도자들도 다 성령 충만했던 그리스도인들이며 모세 이사야 에레미아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줄 때 자녀들은 예언하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환상을 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구원을 받습니다.

  •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 부흥되리라

    2019년 한 해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 교회의 부흥 가정의 부흥 삶에 부흥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시작한다. 예수님 충만으로 성령님 충만으로 입을 열러 복음을 전파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병든자가 고침을 받을 줄 믿는다.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님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라 믿고 셰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손을 얹은즉 회복되리라 우리의 소원은 부흥 꿈에도 소원은 부흥 세례받는 자로 삼천 오천 구원받은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는 부흥되리라

  • 바야흐로 Nyskc 전성시대

    바야흐로 NYSKC 전성시대다. 사라진 무대 커튼을 올리면 다시 2nd Round가 시작되듯이 진정 깨달았다 마라톤도 반환점을 돌면서 다시 시작되는 법 전쟁의 폐허를 딛고 빈민의 그늘을 지나 새롭고 거듭난 부머는 왔다 주님이 보내주신 소망이다 긴 겨울 배고픔도 알고 회로움도 기억하고 주님 안에서 화목됨을 아는 하나된 지체들 신앙의 경륜이 쌓여도 아직은 만만치 않은 믿음생활 그래서 회색은 싫다 붉든지 맑든지 뚜렸한 색이 좋다 역동적인 은혜의 리듬을 타고 예수님을 향한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한다 바야흐로 NYSKC 전성시대다 쉬어는 갈지언정 스스로 엄춰 비켜서는 비검한 마라톤은 없다 늦게 반환점을 출발한 만큼 좀더 힘을 내자 개가 짖는다고 멈추는 기차는 없다 2nd Round 여정은 전능하신 삼위일체 주님게서 이끄신다

  • 사람을 구하고 찾습니다

    신장개업하며 종업원을 찾습니다 웨이터와 웨추레스 주방에서 일할 분 무경험도 괜찮습니다 경력을 가지고 있는 주방장과 매니저 카운터를 맡을 분 주차장에서 뛰실 분을 구합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남자 나이는 26세 키는 5피트 5인치 정도 얼굴은 갸름하고 피부는 검은 편이며 집을 나갈 때 슈트를 입었고 부츠를 신었으며 성경을 늘 품에 안고 다니며 늘 찬송을 부릅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방황하며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이 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는 가련한 자 가난한 자 애통하며 슬퍼하는 자를 보시면 교회로 연락주세요. 앞을 보지 못하거나 앉은뱅이 절름발이 문둥병자 중풍 병자 손 마른 병에 걸린자 각종 병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를 보시면 어찌하든 주께로 데려오세요 또한, 마음이 병들거나 영혼이 침륜에 빠져 허덕이거나 중풍 병으로 삶을 포기하였거나 마귀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고통받는 목마른 사람을 찾고 있으니 다 데려오세요.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포도주와 젖을 구할 수 있고 각색 병든 몸을 다 치료해 주시며 영혼까지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구원의 주께서 구인광고를 내시고 교회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 What's the Mission ?

    선교란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창세기 11장 바벨탑의 언어는 폭력과 착취의 언어이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수단화하는 욕망의 언어다. 참 언어가 아닌 거짓된 언어, 거짓된 교제, 거짓된 만남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며, 그들의 교제는 탐욕을 채우기 위한 교제였으며, 그들의 결탁은 하나님을 추방하려는 불경건한 것이었다. 마치 가룟유다가 제사장들과 은 스무냥에 결탁한 더러운 결탁이었다. 그들의 모든 것에는 ‘꼼수’가 있었다. 그들은 참된 생명의 언어를 잃어 버렸다. 땅의 언어만 남고 하늘의 언어를 잃어 버렸다. 식상하고 폐쇄된 죽은 언어들만이 온땅에 널부러져 있다. 우리는 참된 언어를 잃어 버렸다. 선교는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 탐욕으로 물든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언어, 사랑의 언어, 생명의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성령 강림절에 설교하면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고 타인을 수단화하는 욕망의 바벨탑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향하여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베드로의 강청은 그 옛날 바벨탑 운명 속에서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부름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의 부름이며, 창조적 언어였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창조적 언어요, 참된 생명의 언어이자 근원이다. 이제 꿈꿀 수 있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능력의 언어이다. 주님은 온 세계와 열방 가운데 오직 존재의 이유가 되시며,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언어이시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바벨 공동체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서로 합했다면, 생명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타인들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한다. 주님의 오심은 바벨 공동체 안에 욕망에 찌들린 우리들을 욕망의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어 생명의 광야로 보내신다. 소외되고 버려진 광야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명의 언어를 주어야 한다.

  •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받들어 읽을 때마다 참 놀랍다는 감탄과 감동은 끝이 없는 것같다 2019년 한 동안 우리들의 하나님의 향한 방향은 막16장에 있는 말씀처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또 모는 사람들에게 복된 말씀을 전파하라는 뜻도 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된 말씀 좋은 말씀 축복의 말을 하라는 뜻도 된다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들의 예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우리 이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이웃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여야지 저주를 선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민6장 22-27절의 말씀은 바로 신약성경 마가복음 26장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나가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에게 주신 사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씀인데 그것이 이웃들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세운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스스로가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아론과 그 아들들로 이어지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아론의 후손 곧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백성을 대신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 중에 성전봉사는 물론 백성들의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와 검사와 같은 역활을 담당합니다 그러니까 권세의 자리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쓰임받받을 때만이고 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세우시면서 주신 사명이 또 있었는데 그것이 민수기 6장의 후반절 말씀입니다 첫번째 주신 것은 축복권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백성을 축복하나는 것이었습니다 만민에게 복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죠 또 하나는 은혜의 축복을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강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이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제사장들이 가져야 될 이스라엘을 향한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놀랍지요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들 곧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며 거룩한 제사장처럼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며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새길이 열린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제사장들 외에는 성소에 들어갈수 없고 특헤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갈 수 없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려져 있는 휘장 커튼이 갈라지며 새로운 길이 생겼기에 구원받은 누굳구든지 하나님 앞에 제사장 처럼 나가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에서 말씀하신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고 하신 것은 곧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복을 선포하고 은혜를 나누어주며 평강을 전파하는 사명을 가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비방하고 저주하는 사명은 없습니다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신 사명이 아니라 마귀가 제사장을 그처럼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축복을 하지않으면 무엇이겠습니까 복의 반대는 저주이고 성경을 보면 저주하였더니 그대로 이루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권세를 사용하지 않기를 주님도 원하십니다 단지 대적 마귀 사탄에게는 써야 하겠지요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시면 마음껏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하여서는 축복하라 하신 것을 믿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길 바랍니다

  •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예배

    창세기 2:7 “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람과 동물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뛰어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 예배”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사람 외 어떤 생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릴라가 비록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하고, 간단한 수화를 사용해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사회 체계를 가졌다할지라도, 어떤 신적인 존재를 향한 경외감을 가지고 예배하는 감각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원주민들은 그들이 아무리 미개하다 할지라도 돌무더기라도 쌓으며 “예배” 할 대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죽음으로가 끝이 아님을 사람은 알기에 피라밋을 쌓기도 하고, 죽은 시신을 강물에 띄어 보내기도 한다.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그 마음, 사람에게만 있는 그 마음, 성경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성경은 사람과 동물을 흙으로 지었다고 말한다. 과학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원소 기호(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산, 칼륨, 칼슘, 마그네슘, 황, 규소, 철, 붕소, 망간, 아연, 구리, 몰리브덴. 등 )가 흙과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흙만으로 지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불어 넣으신 “생명의 기운”은 히브리 원어로는 “ 루아흐” 로 쓰이는 데, 이것은 숨, 호흡, 하나님의 영, 바람 , 이라는 단어로 구약에서 쓰이는 말이다. 아담의 히브리 원어는 하나님의 영을 담은 붉은 흙이라는 뜻이다. 즉, 사람이란 하나님의 영을 담은 육신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Gas를 채워야지만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처럼, 사람도 하나님의 영을 담아야지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 존재이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지는 영혼의 빈 공간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채워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라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자아, 힘, 권력, 쾌락, 물질, 지식, 애정, 사람…. 그러나, 일반 차에 일반 gas가 아닌 디젤을 주입하면 고장이 나는 것 처럼,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운 사람은 고장이 나게 되어있다.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차는 수명이 다한 차다. 이 고장난 사람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성령님이 오셔서 다시 거하실 수 있도록, 죄의 값인 죽음을 당신이 직접 치루시고, 그 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셨다. 성령님은 더러운 곳에는 거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성령님을 늘 모시면서,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정한 후 부터, 여러 가지 없었던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 예전에도 죄를 지으면, 양심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이제는 죄가 밉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마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 여겨져도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방향감각이 생긴다. 무엇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음성을 알아 듣게 되는 감각이 생긴다. 성경을 읽으면, 예전엔 그렇게 지루던 말씀들이 꿀송이처럼 달아지고, 깨달아진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달라진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무언가 한주간이 불안해서, 하나님께 얼굴 도장 찍으러 나오는 종교적 관습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목마른 시간이 된다. 예배는 나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감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내 온 몸과 마음으로 경배하며, 매 순간 마다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가는 내 육신의 질 그릇 안에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담는 시간이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에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찌니라(요4:23-24) 하신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 하는 시간이 예배하는 시간이다 예배를 통해서 더욱 내 안이 성령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존귀함이 달라진다. 아무리 금그릇이라 해도 세상 것으로 가득 담겨있다면, 하늘나라에서 그것은 존귀한 그릇이 아니다. 아무리 질그릇이라 해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가득 담겨 있다면, 그것은 하늘나라의 존귀한 그릇이다. 주일 예배는 다시 한번 내 육신을 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채움받는 시간이다. 예배의 맛을 본 사람만이 예배를 사모하게 된다. 주일날 드려지는 예배는 바로 그 하나님의 맛을 보는 시간이다. 그 맛을 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어 있다. 천국의 맛을 본 사람만이 천국을 사모하는 것 처럼, 하나님의 맛을 보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을 사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깊이 있는 개인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한다. Worth(가치) + ship (신분)이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나의 참된 가치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다. 한주간 먹고 사는 문제로, 땅을 보며 살다가, 주일 예배 시간에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래, 나의 삶이 이 땅이 끝이 아니지 하며, 나의 가치가 이 썩어질 육신이 전부가 아니지 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시는 “ 나- 태초의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가면서 예배의 맛이 깊어가야 된다. 천국을 향한 소망이 깊어져야 한다. 육신이 아닌 성령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어야 한다. (육적인) 사람이 비로소 (영적인) 사람이 되는 시간이 예배 시간이다.

  • “엔학고레”와 “라맛 레히”

    40년간의 블레셋 통치의 압제를 당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선택하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포도주와 독주,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하는 구별된 삶을 그의 부모와 그에게 하나님은 요구하였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 정상적인 사사로 구원 역사에 쓰임 받게 될 것을 선포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삼손의 삶은 딤나 여인을 사랑함으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연애함으로 감행하였다. 결혼식을 올리려고 딤나로 내려가는 길에 그는 사자를 만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는 사자 새끼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그 이후에 사자의 주검에서 나는 꿀을 취하여 먹는 죄를 범하였다. 따라서 삼손은 연애와 하나님께서 정해준 규례를 어긴 결과로 그는 잔치 7일 기간 동에 신부를 다른 우인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삿 14:1-20). 삼손은 그것이 원통해서 복수하려 블레셋으로 내려가서 여우 300마리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잡아서 꼬리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 지방에 돌아다니게 함으로 블레셋에 치명적인 손해를 주었다. 그 이후에 그것에 화를 내고 달라 드는 블레셋 사람 1000명을 나귀 턱뼈로 물리치는 전과(戰果)를 올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이룬 것처럼 자랑하고, 행세하여 “라맛 레히”(나귀 턱뼈의 언덕)(삿 15:17)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행위를 기뻐하실 리 없었다. 결과로 그를 일깨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에게 심히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는 어려움을 당하게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부르짖는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은 또 용서하시고 사랑하셔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다.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삿 15:18) 이제야 삼손은 정신을 차리고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부르짖은 자의 샘)(삿 15:19)라고 지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삼손의 “라맛 레히”와 “엔학고레”를 보면서 남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잘 된 것은 내탓이고 못 된 것은 조상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에게도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조금 남 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이면 자기 자랑하고 나타내고, ‘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쉽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삼손의 교훈을 통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 자랑,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냄으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죽을 고생을 치르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엔학고레”를 외치는 어리석음을 재탕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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