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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부터 부활절까지

3월 16일(종려주일 ) - 예루살렘 입성


(마21:1∼11, 막11:1∼11, 눅19:28∼40, 요12:12∼19)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막11:11).


갈릴리와 베뢰아 지경에서의 전도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행사에 참석키 위해, 그리고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자신도 예언한 바대로의 수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보낼 예루살렘에 가까이 옴에 따라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은 사람들에게 더욱 더 널리 전파되고 있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끝내는 고난의 십자가를 향한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희생과 대속의 길이라고 하는 비장한 각오를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시고 공공연히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셨으며, 눈에 보이는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를 갖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 란 뜻)를 외치며 환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셨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신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의 죄악이 가득차 있음을 보셨다.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다.


묵상

1. 수난과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공공연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믿음,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 오늘 우리 마음과 교회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 우리 자신과 교회를

살피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3월 17(월요일) - 성전을 청결케 하심


(마21:12∼17, 막11:12∼19, 눅19:45∼48, 요2:13∼22)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의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막11:15).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따먹고자 하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자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이는 무화과로 상징되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행위였다.


당시 성전 안에서는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데 필요한 짐승, 나무, 새, 포도주, 소금, 기름 등이 매매되고 있었고, 지역화폐를 성전화폐로 교환하여 주는 환전 행위도 성행하였다. 이같이 시장과 하등 다를 바 없게 된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게서 성전을 다시 기도와 예배의 경건한 장소로 바꾸시기 위해 매매하는 자들을 모두 내어 쫓으셨던 것이다. 유대교의 부패상과 형식주의를 정면으로 공박한 이 행위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대적들의 음모가 더욱 가속화 되어 갔다.


예수님은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럽혀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 우리 자신과 주의 몸된 교회,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이 세상을 성결케 하시려는 주님의 거룩한 분노였다.


묵상

1. 나의 신앙이 저주받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아서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3.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롭지 못한 일을 보았을 때 거룩한 분노를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3월18일(화요일) - 과부의 두 렙돈


(막12:41∼44, 눅21: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12:43).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 넣는 것을 지켜보셨다. 때가 마침 유월절이라 전국 각처로부터 많은 참배자들이 모였고 또 많이 헌금하는 자도 있었다. 이때 두 렙돈(렙돈은 가장 작은 히브리 화폐단위)을 넣는 과부를 보시고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녀가 다른 많은 사람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했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이들은 많은 것 가운데서 일부를 헌금했고, 이 과부는 없는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를 드렸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과부의 적은 헌금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신앙의 핵심은 풍부한 양과 화려한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중심과 순수한 본질에 있음을 보여 주셨다. 즉 하나님은 헌신의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묵상

1.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헌신,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고후9:7, 고후8:12)?

3. 다음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을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3월 19일(수) - 한 여인의 헌신


(마26:6∼13, 막14:3∼9, 요12:1∼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14:8).


오늘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사건이 있던 날이다. 마리아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오해와 걱정, 수치심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담하게 향유 한 병 모두를 예수님께 부어 드렸다. 나드 향유는 귀하고 값이 비싸서 주로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에게 바쳐지던 것으로써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다.(이 액수는 일반 노동자 한 사람이 일년간 벌어들이는 소득과 맞먹는다) 여인이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을 헌신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다.


그녀 자신도 자기 행위가 담고 있는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을 준비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본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 속에서도 예수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담하게 진실한 사랑을 바쳐야 하겠다.



묵상

1. 내가 귀히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시간, 재능, 재물, 생명…)?

2.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주님의 일을 하는데 주저한 적은 없습니까?

3. 내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주님께 대한 봉사의 기회를 잃은 적은 없습니까?




3월 20일(세족 목요일) - 최후의 만찬


(마26:17∼30, 막14:12∼21, 눅22:7∼23, 요13:21∼30)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2, 24).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나누고자 하셨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종으로서 봉사하는 모습을 본으로 보여 주신 것이며, 오늘 제자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도 그같이 행하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다. 이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온 인류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가르쳐 주셨다.


잡히시기 직전, 슬픔과 심한 고민에 빠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하였으나 제자들은 잠만 자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마시고 깨어 있어 당신을 본받고 증언할 것을 원하고 계신다.


묵상

1. 오늘 내가 종으로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봅시다.

2.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겠노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제자들처럼 잠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구한 예수님의 최후 기도를 생각해 보고, 오늘날 내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주된 기도 내용이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해 봅시다.




3월 21일(성 금요일) -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마27:1∼56, 막15:1∼41, 눅23:1∼49, 요19:1∼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막15:37).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남김없이 자기를 바치는 사건이었고, 인류를 위한 대속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사건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을 명상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극진하신 사랑을 체험해 보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3∼34). 십자가에 못박고 침뱉고 창으로 찌른 자도, 능욕하고 저주하고 비웃던 자도, 우리 주님은 용서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있으리라"(눅23:42∼43).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신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다"(요19:26∼27).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 주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5∼46). 우리의 구속과 영생을 위한 예수님의 거룩한 절규이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이다.

"다 이루었다"(요19:30).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속하셨다는 어린양의 승리의 외침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오신 예수님의 삶을 온전히 결론짓는 말씀이다.


묵상

1. 용서함 받은 우리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2.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3월 22일(토요일) - 무덤 속의 예수


(마27:57∼66, 막15:42∼47, 눅23:50∼56, 요19:38∼42)


"요셉이 …예수를 내려다가…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막15:46).


유대 민중들로부터 종경받는 사람으로서 산헤드린의 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오셉은 지금껏 자신의 신앙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옛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과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 명예에 치명적 손실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행동을 결연히 행한다. 즉 그는 자신을 예수님과 가까운 자로 자처하며 빌라도에게 청하여 자기를 위해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것이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계셨다. 어느 누구도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었고 무덤 속에 묻혀 있었다. 그를 사랑하던 모든 사람은 절망에 빠졌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희망과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으로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위해 무덤에 묻히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 버리셨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도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다.


묵상

1. 나는 남들이 주님을 외면할 때도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용기있게 주님을 찾고 따를 수 있습니까?

2. 무덤 속에 장사지내야 할 내 죄의 목록을 생각해 봅시다.

3. 우리는 고난과 죽음을 맛보아야 했던 주는 생각지 않고 부활과 영광의 주만 바라보지 않습니까?




3월 23일(부활주일) - 부활의 주를 만난 삶


(마28:1∼10, 막16:1∼8, 눅24:1∼12, 요20:1∼10)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눅24:34).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가장 기쁜 날이다. 금요일에 장사지낸 바 되셨던 예수님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오늘, 과거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부활을 자신이 새롭게 체험하는, 그리하여 부활의 주를 만난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활한 주를 만난 삶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첫째로,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사는 삶이다. 예수 처형을 목격하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은 부활의 주를 만난 후, 새로운 용기를 얻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둘째로,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삶이다.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신도들은 부활한 주를 만난 후 숨고, 무서워하고, 절망에 빠졌던 과거를 불식하고 새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셋째로, 참 생명을 발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죽음을 향하여 무덤에 갔으나 생명을 발견하였다. 시체가 있는 무덤을 향하여 올라갔으나 빈 무덤, 생명이 가득찬 부활의 무덤을 발견했다. 넷째로,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의 우선 순위, 중요도가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체험은 제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주었다. 오늘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부활한 주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묵상

1. 당신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늘 내 삶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묵상해 봅시다.

다섯번째 계명.(엄마 곰과 아기 곰 네 마리)

출애굽기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은 한 주석자가 내린 정의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쓴 명백한 명령이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거룩

구약적 거룩의 개념 오늘날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거룩" 혹은 "성결"의 개념을 잊고 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속에 많은 세속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聖)과 속(俗)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요구하는 거룩의 개념과 대상에 대하여 살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

성경의 절기들 성경의 절기들무릇 절기란 정기적으로 과거의 특적 사건을 기념하여 그 뜻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성경의 절기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원리에 근거한 일자 구분 및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구원 사역을 행하신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의모 조항의 하나로 규정하셨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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