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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수 밖에는

얼마 전에 NYSKC MOVEMENT에 협력하며 나를 그림자처럼 돕던 한 분이 어느 한 교회로 부임하셨다 십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말씀 중심에 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활동하며 미주 전 지역은 물론 세계 많은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힘쓰고 애썼던 목사님이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축하하여 주었고 새롭게 시작되는 목회에 기쁨과 기대를 모아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그런데 기존교회에 새롭게 부임하시는 목사님들이 다 그렇듯이 원로목사님과의 관계가 시간이 흐르면 더 낳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소원해지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는 하였다

그러나 내 가깝게 있었던 목사님이 부임하고 이제 3개월 남짓한데 벌써 심상치 않는 조짐이 보이는 것같다

부임할 때 당회의 만장일치 안수집사회의 만장일치와 중직들의 만장일치 제직회에서 반대의견없이 통과되었을 정도로 교회가 환영하고 원로목사님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목회하여 주실 것을 요청할 정도많큼 서로가 통했으며 사역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부임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원로목사님의 목회적 방향은 뒤로 하고라도 신학적인 문제에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같다

예컨대 금식을 하라고 한다든지 기도원에 올라가 말씀을 받아가지고 내려와서 설교하라든지 하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목회경륜이 일년 오년 된 것이 아니고 무려 25년이나 된 목회자요 나름대로 신학을 강단에서 강의하였고 목회의 선상에서 그래도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인데 이처럼 요구하는 것은 좀더 조심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목회자는 기도와 말씀은 생명을 줄과 같고 목회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필수 중에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주문하는 요구 안에는 신령한 목사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설교해야 한다는 식에 목회와 신학의 방향을 요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는듯하다

과거에 많은 목회자들이 이와같은 방법으로 목회를 하였다고 하는 것은 이견이 없다

그리고 또 그와같이 하는 것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같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은사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도와 말씀을 어느 목회자가 거부할 것인가 만약 거부한다면 그것은 목회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씀을 받아서 설교하라는 요구는 현재의 목회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아닌가

또한 현재의 사역에 대한 불만을 신령이라고 하는 영적인 것에 두고 매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고 그것은 곧 신령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구약의 시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나가 전하는 선지자들과 같이 되라는 조건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다 보여주셨고 그것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기록하였으며 그중에 사도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40일만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만난 뒤에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그분이 하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다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영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영이 아니신가 영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관한 것 모든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영을 믿는 다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에 세례를 받아라 등등의 표현을 하는 것은 다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안약을 사서 발라라 하는 말씀들은 성령으로 거듭나 언제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하신 것은 영적인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도 볼 자가 있느니라 하신 것처럼 영적인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신령한 세계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신비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신학적인 문제를 뒤로 하더라도 맡겨진 후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종에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지는 것은 목회적으로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영파라고 하는 한간에 말처럼 그런 목회로 분리되거나 구별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베런스라는 하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성경적으로도 볼 때도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Complete 완전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는 하나이면서 또한 그 나타내심은 다르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되며 그 중 어느 한편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그 삼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안겨준다

삼위일체의 신앙이야 말로 개혁신앙을 추구하는 루터나 칼빈이나 카이퍼나 하지 메이천 많은 개혁주의 신앙의 선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원로와 후임의 문제는 어찌보면 영적인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자리싸움이라는 것으로 비추어지지만 사실은 영적인 갈등이 아주 심각하게 작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많은 교회들이 후임자를 찾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과연 영적인 방향이 편향되었는가 아니면 건전하고 벨런스가 잘 받는가 지금까지 내가 해 오던 목회적 방향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들을 찾아 후임자를 선택하고자 하는 것을 흔히 볼수 있다

그때마다 다른 후임자들 보다는 현재의 목회자의 자녀도니 목회자를 후임으로 선임하는 것을 몰 때 의견이 분분하다

세습이라는 말을 하는 것부터 구약에 보면 제사장 집안에서 제사장을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가 하면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고는 한다

눈물과 기도로 이룬 엄청난 재산을 놓고 서로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내부적으로는 세습이 아니라 목회적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외부에서는 대불림이라 하여 사회적 문제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본다

어쩌면 현대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교회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것보다 교회의 세속화 혹은 쇠퇴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해 본다

이것은 단순히 원로와 새로 부임된 목회자와의 관계도 있겠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복잡 미묘한 영적이며 심리적인 문제가 이닐까 혹 경제적인 문제도 그 중에 하나 일 것이며 인간에 욕심도 그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이것이 현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이와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 내의 갈등을 세상법정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싸움박질을 하면서 나의 주장을 관철하겠는가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목회자의 일들은 진정 믿음에 대한 영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누가 옳고 그른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전에 서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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