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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1. 에클레시아의 의미


1. 교회론에 들어가면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만 잘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그것은 바른 이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교회는 신앙인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같고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 본질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하고 그 형태는 본질을 바르게 담아 나가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고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를 바람직한 교회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2천년 교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교회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현실 교회란 그 본질적인 의미를 회복해 가면서도 그 형태는 시대에 걸맞게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



2. [교회]라는 말의 뜻은 ? (용어 해석)


영어의 church, 독일어 Kirche, 스웨덴어 kyrka등은 희랍어 kyrike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교회]라는 말로서 에클레시아(ekklesia)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kyrike(주님께 속한)를 사용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루터가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싫어하고 [공동체]라는 말을 즐겨 썼기 때문에 그 영향을 많이 받은 독일 교회와 가까운 교회들이 [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뜻으로 church(영), Kirche(독), kyrka(스웨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로마를 중심한 나라들은 희랍어 [에클레시아(ekklesia)]를 따라서 라틴어 ecclesia, 스페인어 iglesia, 불어 eglise, 이태리어 chiesa 등등의 말로 교회를 표시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 교회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로마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에클레시아)라는 개념을 강조한 것으로 본다. 개신교회는 [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직접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단어를 찾을 수는 있다. [카할]과 [에다]가 그것이다. [카할]은 [의논하기 위해서 소집된 공동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회중]을 뜻하였다. [에다]는 [택함을 받아 모인 집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70인역에서는 [카할]이라는 히브리어를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로 번역했고 [에다]라는 히브리어는 [시나고게]라는 희랍어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에는 카할과 에클레시아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모인 공동체]라는 뜻으로 굳어졌고, [에다]와 [시나고게]는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집](회당)으로 의미가 제한되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회는 [에클레시아]로, 유대인의 회당은 [시나고게]로 구별해서 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별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찾아보자.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는 본래 [일반적인 모임]을 뜻했다. 이 말은 기독교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하나님의 교회][주님의 교회]등으로 말을 붙여서 종교적인 전문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끝으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며, 사람들만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서 머리가 되어 주시고, 성령께서 다스리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인이 되심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이 세상의 어떤 권세 아래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교회는 神人共同體이며,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기에서 교회의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



2. 교회의 근원(根源)



교회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교회의 근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신학자들에 따라서 그 해답이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한다.



1. 교회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교회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가? 교회의 시작을 구약에서 찾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하나님의 법을 받아 계약 민족이 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16:16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으시고 훈련시키신 후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교회의 연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교회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직접 교회를 세우신 일도 없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교회]는 아니다. 복음서에는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두번 나온다(마 16:18 18:17).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1백번 정도 나온다. 예수께서 세우시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마태복음 16:18에 나오는 [교회]는 현재 세우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세워질 교회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활동하셨고,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지만, 그 때까지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라고 구별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과 완전히 구별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지도 않으셨고 제자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핵심 인물이라고 당장에 구별하여 세우신 것도 아니다. 다만 미래의 일꾼으로 훈련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과 활동이 후에 세워진 교회의 기초가 된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교회]는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前兆)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지향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교회는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 신앙으로 다시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신다는 것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모임으로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종말적인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2. 교회의 근원


교회의 근원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전부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과 그 모든 것을 믿는 자들에게 임하신 성령 강림까지, 총체적인 것 모두가 교회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여서 자기들이 믿는 바를 서로 확인하고 기뻐하며 새 언약의 떡과 잔을 나누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그들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활동에 대한 확신을 가져오게 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부활 신앙이 근본이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확립되면서 교회의 기초가 되는 신앙이 정립된 것이다. 12제자와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와 바울이 중심이 되어 원시 교회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은 교회의 근원이요, 머리이시며 장차 오셔서 완성하시고 통치하실 분으로 모셨던 것이다.


3. 교회의 특징



1. 교회의 특성


니케아 신조 가운데 교회에 대한 고백에 보면 [우리는 또한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 적인 교회를 믿는다]라고 되어 있고, 사도 신조에는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간단히 취급하고 있다. [거룩한 공회(公會)]는 [거룩한 공교회(公敎會)],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라는 뜻이다. 사도 신조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다른 신앙 조항은 간단히 한 두마디로 요약하는 정도이다.


니케아 신조에는 참 교회의 특성이 네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의 교회(單一性), 거룩한 교회(聖性), 보편적인 교회(普遍性),사도 적인 교회(使徒性), 이것이 참교회의 특징으로, 본질을 떠난 거짓 교회와 구별하는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2. 하나의 교회


이것은 교회의 단일성 또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 시니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 도다](엡 4:4-6절).


교회의 단일성은 하나라는 숫자나 윤리적 일치나 교회법이나 제도적 일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교회의 단일성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영적 현상이다. 에베소서에서 밝힌 대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일체되심에서 비롯된다.


교회의 단일성은 제도적인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라고 하는 숫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수의 지역 교회들과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교회들 안에서도 하나의 교회가 현존한다는 것이다. 다양성 속에서도 단일성과 공통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분열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약점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분 하나님을 바르게 모시면서 교회의 통일성과 단일성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3. 보편적인 교회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28). 보편적 교회라는 말은 지방 교회, 지역 교회가 아닌 전체 교회를 말하며 세계적(Universal) 교회를 말한다. [누구든지], [모든 족속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고, 자유자나 종이나 신분의 차별이 없으며, 남자나 여자나 성의 차별이 없는 만민의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시고 인종과 신분과 성의 차별을 무너뜨리셨던 것처럼, 사도들이 세운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모든 차별이 없어지게 되어서 초기 교회에서는 죄인과 종과 여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떡을 떼며 친교 하는 혁명적인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기들만이 보편적 교회(Catholic)라고 하고, 개신 교회는 자신들이 진정한 참 교회라고 한다. 카톨릭은 잡동사니가 되었고, 개신교회는 분열의 죄를 계속하고 있다.


아직도 교회 안에서 신분의 차별이나 계급 의식이 있는가 하면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들의 죄악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빈곤의 차별이 있고, 기독교 신앙을 민족주의나 애국 신앙으로 격하시키는 실수도 계속하고 있다. 주 안에서 만민이 평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한 형제 자매가 되는 만민의 교회, 전체의 교회, 세계적인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4. 거룩한 교회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딤전 3:15-16).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보존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 공동체이며, 성령께서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항상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피조물이며,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시고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면 교회는 흠도 없고 깨끗한 공동체인가? 아니면 온갖 죄악이 아직도 우글거리는 죄많은 공동체인가? 우리가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분명히 죄인들이 모인 죄인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온갖 약점들이 모여서 온갖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면 교회는 죄인들이 모여서 죄만 저지르고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죄인들의 수용소와 같은 곳인가? 그렇지 않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임에는 틀림없으나,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떠나고, 죄문제를 해결하여 죄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죄를 책망하고 죄를 회개하고 죄의 용서가 있어, 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거룩한 속죄의 역사가 일어나는 성삼위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교회의 거룩성을 고집하면서 죄인들을 내어 쫓음으로 거룩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누가 죄많은 사람인가를 구별할 수 없다. [거룩한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나 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께서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요, 터전이요, 감독자이시기 때문에 근본이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죄의 역사를 통해서 죄인들이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세상 어떤 공동체와도 구별되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거룩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이면서도 거룩한 교회이며, 거룩한 교회이면서도 이직도 죄가 남아 있는 인간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여져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레 11:45).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어떠한 박해 속에서도 굴복 당하거나 파멸될 수 없는 끈질긴 영속성이 있으며(마 16:18), 어떠한 죄악의 세력에도 감염되어 소멸되지 않도록 진리의 영께서 보존하고 계시며(요 14:16-17), 교회가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입고 신앙이 약해지고 흔들린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변질될 수 없는 확실한 진리 위에서 있다(딤전 3:15).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의 양이며, 하나님의 자식이다. 교회가 아무리 잘못되어도,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시고,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며, 탕자가 돌아올 때 기쁨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내어쫓지 않으신다. 거룩한 교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성도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가야하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말씀이 선포되며 회개와 속죄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며, 죄인이 거듭나서 물과 불로 세례 받는 수가 많아지며, 거룩한 성례전이 집행되며, 성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변화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야 한다.


5. 사도적인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았고 보내심을 받았으며,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형제의 발을 씻기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모든 일을 위한 사명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서 일하다가 대부분이 순교하였다. 사도들은 다시 사도라는 사람들을 세우지 않았으나 사도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직분, 곧 사명을 교회에 위임하고 떠났다. 그래서 교회를 「사도의 교회」라고 하지 않고 「사도적인 교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도 적인 사역(使役)만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들의 직분과 사명을 누가 계승하는 것인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이 베드로에게 이양되었고 베드로는 교황에게 권한을 물려주었으며, 교황은 각 지역의 주교에게, 주교는 지교회 신부들에게 이양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셨고 베드로는 교황에게 맡겼으므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권을 물려받은 유일한 권위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요 사도들의 교회이며, 교황의 교회는 주교의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주교가 인정하지 않는 교회, 신부가 가지고 있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인가? 개혁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도들이 죽으면서 그 권위와 사명과 직무를 누구에게 물려주었는가? 마태복음 16장 16-19절 말씀을 카톨릭 교회에서는 중요한 성서적 근거로 삼고 예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라는 한 개인을 지칭하신 것이 아니고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의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사도들이 사도로서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어느 누구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교회에 맡긴 것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세운 교회에 사도들의 모든 사명을 계승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봉사에 대해서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명실공히 사도들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취급해야 할 것은 사도적 계승이라는 실질적 연속성이다. 이 연속성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연속성이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사도들과 함께 역사 하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사도들이 세운 그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전]이었으며, 성령께서 사도들의 교회와 사도 이후의 교회를 연결하는 영적 계승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사도들과 사도 이후의 교회와의 실질적 연속성을 가능케 하셨는가? 첫째는, 사도들의 증언, 즉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전하여지고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서 그 말씀에 복종하고 살아가는 일을 통해서 사도적 계승이 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주께서 사도들에게 분부하신 봉사를 사도들이 목숨을 바쳐 수행한 것처럼, 교회가 사도들의 봉사의 모범을 따라 복종하며 실천할 때 사도적 계승이 가능하였다. 복음 전파, 세례, 기도, 형제의 발을 씻기고, 구제하고, 친교와 일치, 세계를 향한 선교와 봉사, 인류를 위한 구원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다할 때, 진정한 사도 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적 권위는 그의 말씀과 봉사에 있고, 사도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6. 교회가 하는 일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 교회의 기능이나 사명이나 사역을 묶어서 말한다면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 안으로 행하는 일과 세상을 향하여 밖으로 하는 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그 본질적 의미가 세상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할 때, 굳이 구분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1. 교회 안에서 하는 일


교회가 자체 안에서 행하는 일은 말씀 선포(케리그마), 말씀 가르침(디다케), 성례전 집행(유카리스트), 친교(코이노니아), 봉사(디아코니아) 등이다.


첫째로, 교회는 말씀 사역을 감당한다. 여기에는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있다. 말씀 선포(케리그마)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를 선포하고 용서를 약속하는 사역이고 말씀을 가르치는 [디다케]는 말씀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서 바르게 살아가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룩히 보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과 성결의 생활을 가능케 한다.


둘째로, 교회는 성례전을 거룩하게 집행한다. 성례전(聖禮典)은 [유카리스트]라고 하는데 로마 카톨릭에는 일곱 가지 성례가 있으나, 개신 교회에는 [성찬과 세례] 두 가지만 성례로 인정하고 시행한다. 성찬 예식은 예수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시행하라고 명하신 예식이요(마 26:26,28, 막14:22-24, 고전 11:23-27) 세례 예식도 주께서 직접 분부하신 예식이다(마28:19). 나머지 다섯 가지는 성서적인 근거가 희박함으로 종교개혁 이후 개신 교회에서는 지키지 않는다.


성찬 예식은 주께서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신자는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해서 2천여 년 전 실제로 역사 속에서 계셨던 주님을 기억해 내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재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 떡과 잔을 받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씻는 예식인데, 그 의미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를 맺는 것과 은혜의 언약의 혜택에 참례한다는 것과, 주님의 소유가 된다는 계약을 표시하고 확증하는 예식이다.


셋째로, 교회는 성도간의 친교(코이노니아)를 수행한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형제됨을 공고히 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가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해야만 완전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인종의 차별, 신분의 차별, 남녀의 차별, 빈부의 차별 등 모든 차별이 없어지도록 주님의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루는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자체가 화목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세상에 평화를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넷째로, 교회는 봉사의 사역을 수행한다. 교회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은 주님께서 하신 일 중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디아코니아]라고 하는 섬기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교회의 모든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일을 계승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봉사의 뿌리는 사랑이어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섬김의 직책을 받아서 서로 서로가 봉사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것이다.



2. 교회가 밖을 향하여 하는 일


첫째로, 교회는 세계 구원을 위한 복음을 전파한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차원에서 교회는 자체의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이 세상 모든 분야가 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회복되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사랑의 봉사를 수행한다. 교회는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려고 하면 쇠퇴하나, 세상을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면 흥왕 하여 진다.


7. 교회의 일과 일꾼들



1. 일하기 위해서 세워진 교회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그리스도의 일]을 계승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일]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시고 계속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홀로 그 일을 완전히 수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진행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기관이다.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그 일을 교회가 계승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2. 교회의 일을 수행할 일꾼들을 세움


교직 제도의 시작 : 교회가 주님의 일을 맡아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담당할 일꾼이 필요하다. 사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부흥하였다. 그래서 사도들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져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도들은 일곱 집사들을 세워 그 많은 일들을 분담하게 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조직의 시작이요, 교직(敎職)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 직무를 누구에게 물려주었는가? 어떤 특정인들에게 물려주었다기 보다는 모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공동으로 수행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3. 교회의 공동 직무와 특별한 직무의 분화(分化)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일들 중에 그리스도인 하나 하나가 반드시 똑같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복음 전하는 일이나 말씀을 가르치는 일, 중보의 기도 생활, 화해자의 역할, 형제의 발을 씻기는 봉사의 일, 구제하는 일 등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구성원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모두가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사역이요 필수적인 사역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자라나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례식을 거행하고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들,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 직무의 목적대로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맞는 직무 담당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따라서 여러 가지 직임을 세우게 되었다. 교회의 평신도 모두가 공동으로 수행해야 할 공동 직무가 기본이요 중요한 것이지만, 교회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특수한 경우에 세우는 특별 직무가 구분되는데 이것은 결코 특권도 아니고 신분의 차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 근본 정신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섬기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이나 주교나 신부와 같은 신분과 평신도들의 신분을 구별하는 교직 제도는 초대 교회의 정신과는 판이한 것이다.



4. 여러 가지 직무들


초기 교회의 여러 가지 직무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사도와 선지자(예언자) 전도자, 목사, 교사, 장로, 감독, 집사 등이다. 이러한 모든 직무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경우와, 교인들이 선출한 경우로 나눌 수 있고, 칼빈의 분류대로 [가르치는 직무]와 [봉사하는 직무]로 나눌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직무는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 나누어지는 것이고,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튼튼히 세우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이요, 봉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엡 4:12).


모든 직무는 성령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주장하심으로 성령께 복종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전12:4-6, 행1:8).


8. 바람직한 교회 갱신



1. 교회 갱신의 당위성


교회론에 들어오면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여기서도 교회 갱신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교회는 그 본질에서 이탈하지 말고 그 형태를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살게 된다. 교회는 완성품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사도들도 교회를 완성품으로 만든 일이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계승자인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역사 속에서 계속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교회는 그리스도 재림때 완성되어 하나님 나라로 대치될 것이다. 교회의 형태나 내용에 있어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란 없다. 다만 변해서는 안될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뿐이다. 교회는 바로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도구일 뿐이다. 구약 시대에도 교직 제도나 제사 제도 같은 것이 끊임없이 변천해 왔다.


2천년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항상 자기 갱신에 힘써 왔고 그것이 역사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나 조직의 개혁뿐만 아니라 말씀을 해석하는 신학까지도 시대에 맞게 항상 변한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는 진리이지만 그 말씀을 해석하는 신학도 상황의 변화에 맞게 발전해 왔던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복음을 낡은 부대에 오래 담아 두면 안된다. 복음은 언제나 새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교회 갱신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2. 바람직한 교회 갱신


교회는 어떻게 개혁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개혁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


1) 전체적인 개혁보다는 필요에 따른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이 바람직하다. 그레고리 1세의 전체적인 제도 개혁이나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같은 획기적인 대개혁을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또 그러한 혁명적인 대개혁을 필요로 할 정도로 정체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2)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이 좋다. 살아 있는 몸은 부단히 신진대사를 하는 것처럼 꾸준하게 자기 갱신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병이 심해져서 갑작스러운 대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통해서 병을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외형적인(제도와 조직들) 개혁과 내부적인(신학과 교리) 개혁은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음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절실할 필요가 안에서 일어나 밖으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러운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4) 교회 외적인 힘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개혁되는 것보다는 교회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순수하게 개혁해 나가야 바람직하다.



3. 바람직한 교회상 모색


1) 보편적이면서 하나의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폐쇄적이고 분파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서 세계 교회가 연합하여 공동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2) 복음 적인 교회는 부흥하고, 문화적인 사업이나 사회 개혁에 역점을 두는 교회는 쇠퇴한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역점을 두고 성서적인 순수한 신앙 운동을 일으키는 교회가 바람직한 성장을 한다.


3) 교회의 제도와 조직을 능률화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교직 담당자나 평신도가 공동 직무를 인식하고,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평신도들의 활동을 극대화시켜야 교회라는 전체 덩어리가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4) 세상을 지향하는 섬기는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5) 교회는 현실주의에 빠지지 말고 종말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현실을 가장 책임 있게 살아가는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6) 바람직한 교회는 성경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복음을 선포하며, 뜨거운 사랑으로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여 역사와 세상의 정의로운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다섯번째 계명.(엄마 곰과 아기 곰 네 마리)

출애굽기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은 한 주석자가 내린 정의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쓴 명백한 명령이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거룩

구약적 거룩의 개념 오늘날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거룩" 혹은 "성결"의 개념을 잊고 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속에 많은 세속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聖)과 속(俗)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요구하는 거룩의 개념과 대상에 대하여 살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

성경의 절기들 성경의 절기들무릇 절기란 정기적으로 과거의 특적 사건을 기념하여 그 뜻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성경의 절기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원리에 근거한 일자 구분 및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구원 사역을 행하신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의모 조항의 하나로 규정하셨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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