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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요단강앞에서 (수 3:7-13)

설교일 : 092313

설교자 : 담임목사

본문말씀 : 수 3:7-13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말씀입니다. 축복의 가나안을 맛보기 위해 최대의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요단강을 반드시 건너야할 사명이 저들앞에 놓여 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항상 요단강의 어려움들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말씀가운데, 삶의 요단강을 건너는 비결을 배우시고, 가나안의 형통과 축복을 맛볼 수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I. 포기하지 말라.


인생의 축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축복의 장애물인 요단을 건너지 못하면 저들은 광야에 머물러야 합니다. 광야는 위험과 기근과 사단의 출몰함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 길을 걸으며 은혜를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제 그 광야길을 지나왔으면 성숙한 믿음으로 이제는 가나안을 향해 요단강에 믿음의 발을 내어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의 순리입니다. 이 순리앞에 결코 포기하거나 연약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잠시 귀를 즐겁게 하는 교양강좌를 듣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과 질곡같은 삶의 어려움들을 벗어버리고 축복의 가나안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힘입어서 승리의 축복을 맛보기 위해 교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죽도록 고생만 시키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복 주시기 원하시는 내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단강앞에서 안빈낙도를 꿈꾸지 마십시오. 초막을 짓고 살려하면, 그 초막이 마르고 바람에 날리우는 날에는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됩니다.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기를 방향을 정하시고 멈추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II. 오늘 순종하라


7절 말씀에 ‘오늘부터 시작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지금부터 매일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순종할 때, 분명한 승리가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의 결단과 승리가 있음으로 계속적인 큰 승리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오늘부터 당장 순종하는 사람과, 매사에 내일부터가 입에 늘 붙어다니는 사람의 작은 차이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오늘 좋은 사람이 되시고 오늘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을 잘 살지 못하면서, 미래가 축복가운데 거할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겠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개처럼 벌고 있을 때도 자기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에 개같은 인생(?)으로 살다가, 잠시 귀족의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세월, 상실의 계절도 유한한 인생에겐 결코 반복되지 않는 최고의 복된 계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고 곳간을 넓히고, 자기의 영혼의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주님은 ‘오늘밤 네 영혼을 찾으시면, 네 재물은 뉘것이 되겟느냐’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식으로 표현하면, 주님도, 교회도, 복음도 없이 열심히 벌어 모았는데, 하룻 밤에 영혼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으로 보면 ‘심장마비’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작별인사도 없이, 그토록 단 한순간도 없으면 못 살것 같은, 핸드폰까지 다 내려 놓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오늘의 최선, 오늘 믿음의 도전, 오늘 받을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 복된 영혼이요, 위기의 요단강앞에서 낙심치 아니하고, 기적을 맛보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은혜가 있고, 오늘의 날에 순종과 최선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승자가 매일의 승자가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을 마지막 생명의 날처럼 살아갈 때, 주의 도우심으로 인생의 요단강을 평안히 건너게 될 것입니다.



III. 말씀을 선포하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제사장들이 앞장 설 것이며, 언약궤와 2천규빗이 되게 합니다. 2천규빗의 거리를 둔 것은 모든 백성이 언약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거리입니다.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축복의 장애물인 요단강을 향해 전진하라는 의미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몫이 될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삶의 질곡같은 문제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함이 하나님의 능력 베푸심의 시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임재의 동행을 경험하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인생의 오리무중같은 짙은 안개는 말씀의 빛가운데 환희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영적 요단강을 건널 때도, 영적 가장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순간에 자녀들에게 핑계하는 부모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너도 아버지 돼 봐라.’ 아내에게 ‘당신도 내 입장이 돼봐라.’ 그런 힘 빠지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애들아!, 여보!, 말씀가운데 마음을 강하게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면, 반드시 형통케 하신다고 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바람에 날리우는 마른 풀과 같이 하신다고 하셨어. 할렐루야!’하고서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려움의 순간에 말씀을 선포하는 가장이 있는 가정, 그 가정은 어떤 요단강앞에서도 보석같은 믿음의 명문가문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앞에서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가 열려질 것입니다.



IV. 말씀에 화합하라


요단강이라는 최대의 난관앞에서 여호수아는 말씀을 선포했고, 백성들은 그 말씀에 화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 눈앞에 추수기에 언덕까지 차오르는 요단강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의 중심을 향해 방향을 한가지로 하고 나아갑니다. 말씀은 인생의 방향을 보게 하고, 믿음은 그 말씀에 화합하여 팔다리를 움직여 구체적인 순종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들에게 여전히 육신의 눈이 열려있었지만, 말씀과 함께하는 믿음의 눈으로,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며 앞을 향해서 나아갔던 것입니다. 말씀에 온 마음으로 화합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곳에 축복이 있습니다.


지상교회가 불완전하기에, 하나님의 축복의 땅/가나안의 비젼이 나타났음에도, 요단강물을 두려워하고 쉽게 분쟁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갈등하고 분쟁하는 문제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말씀에 주목하지 못하고, 말씀을 말씀으로 선포하지 못하는 영적인 무기력함과 성도들이 말씀앞에 온전히 화합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결국, 발길을 말씀의 지시하는 반대방향으로 돌리다가, 광야에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방황의 끝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자와 성도님들이 하나가 될 때,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환상적인 연주곡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역사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말씀에 겸손하게 화합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아기가 뜨거운 국에 손을 대지 말라고 가르치기보다는, 한번쯤 대어보고 뜨거운 줄 알면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용감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일부러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게 하기 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화가 된다고 가르치고 주의를 주는 부모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든지 해보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교육된 자녀들은, 죄악의 문제앞에서도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진짜, 지혜롭고 믿음있는 부모와 자녀는 말씀의 경고와 가르침을 신뢰함으로 실패의 과정을 쉽게 지나, 축복의 날들을 더 온전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늘 말씀 듣는 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감동앞에 단 마음으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인생의 요단강을 아무 문제없이 쉬 건너시는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V. 밟고 멈추어라


13절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었다는 말씀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요단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물을 밟고 멈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15절 말씀을 보면, 요단강이 홍수가 날 정도로 범람하던 시기였음을 말합니다. 이 정도 되면, 강물앞에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아마도, 저들의 주특기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왜 하필 이때 건너야 하는가? 저 물을 한번 봐라.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서는 물귀신 만들일 있냐? 등등의 원망과 불평일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가더라도, 큰 위기의 순간을 당하는 경우에는 머리로는 이해하는 말씀이 입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봅니다. 아마 바로 이런 순간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미리 대처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발을 멈춰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을 만큼, 말씀에 순종함에도 불구하고, 위기와 두려움과 재앙이 눈앞에 찾아오는, 바로 그때에 발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발을 멈추고, 그 넘치는 강물을 보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최선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 후에, 나머지는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내가 할 것이이게, 나에게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위기와 큰 난관앞에 직면하여 발을 멈추는 일이, 결코 시간낭비/불필요/쓸데 없는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앞에서, 불평과 원망의 순간에, 입술을 닫고/침묵하며, 말씀을 마음에 품고서, 기도가운데 하늘의 도우심을 앙망하고/기대하는 것은, 천천과 만만의 군사의 힘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발을 이리 저리 많이 움직이며, 사람의 도움을 찾아다닐 때, 한번 더 금식/한번 더 기도하며, 하늘의 지혜를 구하였고, 그 위기를 하나님의 기적같은 도우심으로 이겨내었노라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저들은 요단강앞에서 하나님을 기대하며, 멈추어 섰는데 이것이 바로 저들의 믿음입니다. 위기의 때에, 많은 인간적인 방법들을 내려놓고, 기도의 불을 끄트리지 않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위기의 순간에 발을 멈추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여전히 나약해서 방향을 틀어 광야에 머물게 되거나, 아니면 자신을 과신해서 이리 저리 발을 움직이며 물에 뛰어들었다가 강물에 떠내려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말씀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도의 기다림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기대할 수 있음이 축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인생의 위기와 같은 요단강앞에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으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 말씀앞에 최선의 순종을 드리십시오.

위기의 일들 앞에 말씀을 앞세우고,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화합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더욱 크지고 가까이 직면하게 될 때, 발을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 발을 멈추어 기대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앞의 요단을 건너 언약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의 땅, 가나안을 얻고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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