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 싱가포르 침례교회 ▶ 극장을 인수하여 더 성장하고 있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들의 특징이 극장을 인수하여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한국처럼 영화문화가 발전된 것이 아니라서 쉽게 인수할 수 있다. 유교권 문화 속에서 붉은 장미처럼 꽃피운 싱가포르 침례교회(FCBC)는 1986년 8월, 350명 교인으로 출발하여 1988년 셀 교회로 전환하면서 800명으로 증가했고, 1995년말 예배참석자가 6000명으로 성장한 기적을 남긴 교회이다. 도시의 번화한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극장을 개조해서 만든 교회 본당 건물에서는 주일 4부 예배를 드린 후 친교와 점심은 교회 밖 노점에서 이루어진다. 이 노점들은 이 교회 성도를 상대로 장사해서 먹고 산다고 한다. 10,000명 이상이 모이는 년 2회 정도의 대집회 때는 싱가포르 최대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쓴다. 교회 산하에 셀 목자훈련센타, 국제훈련센타, 사회봉사센타가 있고, 1995년 당시에 벌써 69명의 목사와 105명의 전임직원이 교회 모든 운영을 도맡아 하고, 1000여명의 지체사역 자원 봉사자들이 사역자를 도와 전도와 이웃사랑을 실시하고 있다. 1998년에는 목사만도 11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 교회 목사가 되려면 1년에서 1년6개월 정도 헌신적인 봉사와 함께 목사 안수를 준다) 매주 모이는 활동적인 셀이 700개이고 일년에 한번 정도 모든 셀교인들이 총동원되어 싱가포르 전역에 흩어져 구제와 봉사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셀(10∼15명) 다섯이 모여 죤(Zone)이 되고, 죤이 모여 디스터릭(District)이 된다. 셀본부 상황실의 큰 상황판에는 교회 모든 쎌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도록 해서 24시간 셀의 활동을 점검하고 있다. ▶교회 시작 동기와 발전과정 셀이 없던 지루한 계절이 있었다. 셀이 없던 교회 초창기에는 앞문으로 들어오는 교인수보다 뒷문으로 빠져 나가는 수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교회는 사람보다 사역을, 사랑보다 사명을, 말씀보다는 말만 하는 '지루한 계절'을 통과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영적성장이 둔해지고 성도들은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로랜스 콩은 강의중 고백 한다. ▶ 랄프 네이버 박사의 소그룹 비전 이 시기에 셀교회 개념을 처음 확대 발전시킨 '랄프 네이버'박사(Dr. Ralph W. Neighbour)가 싱가포르침례교회 협동목사로 잠시 부임하여 쎌을 도입하게 됐다. 네이버 박사는 22세에 빌리 그래함 전도팀의 일원으로 맹활약했고, 그 후 뉴욕지역에서 5년동안 23개의 침례교회를 개척하는 억척을 보인다. 1969년 40세에 고향 휴스톤에서 목회를 시작, 불신자에 대한 전도와 신자들의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 셀개념을 처음으로 개진하여 실험기간을 거쳐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때 남침례회교단 해외선교부에서 이와 같은 전략을 싱가포르에 심기 위하여 그를 해외에 파송한다. 1997년 다시 휴스톤에 돌아와 4년 동안 셀교회 개념을 재정립하고 확대 적용한 결과 18개월 만에 교인 수가 700에서 1400으로 배가 됐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 질문은 지루한 터널을 통과하던 어두운 계절, 싱가폴 교회의 교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메아리쳤다. 이 시기에 셀교회의 교과서적인 책 'Where do we go from here?' 저자인 네이버 박사가 싱가폴 침례교회에 와서 셀교회를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쎌이 없는 교회에서 쎌이 있는 교회로, 쎌이 있는 교회에서 완전한 쎌 교회로 옷을 갈아 입고, '일과 프로그램 중심'의 전통교회에서 '사람과 사건'중심의 쎌교회로 완전 전환(paradigm shift)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쎌이라는 새로운 배를 타고, 돛을 높이 올리고, 방향을 잡고, 성령의 신바람의 인도를 받아 신나게 푯대를 향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 장하게 보였을 것이다. ▶쎌이 싹튼 봄의 계절 50개로 시작한 쎌이 짧은 기간 동안에 700개로 늘어나면서 초대형 교회로 위상을 바꾼다. 교회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군중 속의 고독이나 자리만 채우는 구경꾼으로부터 쎌을 통해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만나서 나눔을 갖고, 치유와 삶의 기쁨을 경험한다. 나가서 전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몸살이 나는 모습으로 됐다. 콩 담임목사의 투명한 비전과 지도력, 사역자들의 혼신의 노력, 전 임직원들의 충성, 평신도들의 헌신이 대합주곡이 되어 교회를 변화시켰다. ▶쎌과 함께 350에서 6000으로 겨자씨가 거목으로 변하기까지 '네이버'박사가 쎌을 재정비하고 떠난 후 콩 목사는 쎌을 더욱 확대 발전시킨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선 교인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며, 제자훈련 및 사람을 키우고, 지체사역을 쎌교회에 맞도록 재조정하는 대단원의 작업을 과감히 추진하고 콩 목사가 직접 진두 지휘하며 주님의 세밀한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귀를 기울였고, 마침내 교인이 부쩍부쩍 늘기 시작했다. 1995년말 350명에서 6000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현재는 8천명이 출석하고 있으며, 1만명의 교인으로 성장하게 됐다. 주일 대 예배는 그야말로 축제다. 찬양, 말씀, 성찬식, 침례식, 간증, 연극이 있고, 치유를 맛보는 하나님의 은혜의 잔치다. 1995년 한해 동안에 침례받은 수가 556명에 이르고 또한 같은 해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수가 1,931명이나 된다. 한알의 겨자씨가 거목을 이루어 시원한 그늘을 안겨준 셈이다. ▶ 소매 걷고 '콩콩'뛰는 로랜스 콩 목사 그는 펄펄 끓는 가슴과 냉철한 지혜, 그리고 경영의 귀재다. '연말에 계산해 보십시다. 한해 교회예산지출 때 주님 영접수의 비율로써 투자때 효과를 헤아려 봅시다. 당신도 장사하고 이익을 계산하지 않습니까?' 그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그는 기도하면서 주 안에서 담대해지고, 소매 걷고 '콩 콩' 잘도 뜁니다. 담임목사가 강단위에서 뛰면 강단아래 있는 부목사 69명과 직원 100여명이 함께 따라 뛰고, 사역자와 직원들이 뛰니까 평신도들도 신나게 된다. 하나가 되고, 새 힘이 솟아나고, 그 힘이 쎌로 연결되고, 다시 지체사역으로 이어지는 띠를 이룬다. 이것은 콩목사 자신이 양으로 속해 있는 쎌의 평신도목사의 진한 간증들이다. ▶ 교회비전 - '10억 중국을 내게만 맡겨라!' 투명한 비전과 실현가능한 전략은 사역을 낳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다.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가 5000개 마을, 아파트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콩 목사의 꿈은 서기 2000년까지 싱가포르 모든 마을에 적어도 한 개의 '기도 쎌' 즉 5000개의 쎌을 세우는 것이다. 더욱 엄청난 꿈은 10억이 넘는 중국인의 복음화를 자기교회에서 책임지겠다는 오만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만에 국제 쎌 훈련센타의 전초기지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2002년까지 전세계 50개국에 쎌교회를 심는다는 것이다. 구 소련 국가들을 차례차례 방문하면서 작업을 이미 개시했다. ▶쎌교회의 구조와 특징 쎌, 쎌, 쎌, 그게 뭐죠? 쎌(cell)은 감옥이란 뜻도 있지만 생명의 구성 단위인 세포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에 속한다. 생명체는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되어 기능을 발휘한다. 다시 말하면 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기관이 되며, 기관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인 몸을 이루듯, 쎌 교회도 같은 이치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의미한다. ▶쎌교회 특징은 '나 만나' 사역 쎌은 나눔과 치유와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소망/사랑의 작은 공동체이다. 다시 말하면 쎌은 '나를 만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 나가서, 만나를 나누는 '나 만나' 사역이다. 그리하여 쎌 교회에 늘 하나씩 남겨 놓는 빈자리에 불신자를 초청하여 구경꾼에서 일꾼으로, 일꾼에서 추수꾼으로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하나의 쎌이 자라 12명 이상으로 증식되면 분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