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영국을 제외한 유럽 각국에는 상류층이 즐기는 오페라와, 또 대중이 즐기는 오페레타, 또는 오페라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오페라의 전통이 없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오페라, 오페레타, 희극오페라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경제적·정치적 부강을 누리게 된 영국은 오락물을 급조하게 되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이 뮤지컬 화스(Musical farce)였다. 다음에는 ‘뮤지컬 코미디’라는 명칭이 붙여졌는데, 희극과 춤과 노래와 미녀들을 동원한 무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코메디’가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리면서 본격적인 양식으로 형성된다.
대체로 미국 뮤지컬의 형성은 세 줄기, 즉 프랑스의 오페라 부프, 영국의 코믹 오페라, 독일어권의 비인 오페레타 등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1800년대의 미국에는 노래와 춤, 그리고 코러스 걸의 군무가 있는 연예가 널리 정착되어 있었다. 유럽 출신 이민의 예능인들이 이러한 미국적 연예양식과 비인 오페레타를 연결시켜 만들어낸 것이 뮤지컬이다. 따라서 뮤지컬의 변천이나 발전양상은 미국의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상황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중들은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오락적인 문화를 갈망했는데, 바로 그런 대중의 정서에 맞는 낙천적이고 오락적인 뮤지컬이 대중예술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20년대 말에는 뮤지컬이 쇼적인 구성을 벗어나 연극적 플롯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강조하게 된다. 제롬 컨이 만든 쇼 보트(1928)를 시작으로 음악과 노래와 춤이 이야기 구성과 등장인물의 발전에 더욱 세심하게 통합되면서 가장 성공적인 상업연극이 된 것이다. 1931년에는 《너를 노래한다》가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연극의 장르로 인정을 받았고, 1943년에 공연된 《오클라호마》는 2000회가 넘는 장기공연에 성공함으로써 국민적 장르로 자리 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아가씨와 건달들》, 《왕과 나》를 비롯한 뮤지컬 작품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세계적 예술로 격상시켰으며, 1980년대 이후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만들어진 걸작 뮤지컬들이 브로드웨이에서 동시 공연되고, 잇따라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공연됨으로써 그야말로 뮤지컬 시대에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전하였다.
뮤지컬의 발전사는 대략 다음과 같이 4시기로 구분된다. 뮤지컬이 독특한 공연예술로 완성된 1930년대가 제1기 ‘뮤지컬 황금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를 되찾는 50년대부터 60년대 전반까지가 제2기인 ‘뮤지컬 발전기’이다. 이 시기 뮤지컬의 특징은 전쟁의 상흔 등 부정적 시대현실을 낙천적 세계와 긍정적인 미래의 꿈으로 바꾸고자 했으며,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와 작곡가, 안무가들의 공동작업에 치중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작업이 대표적이며, 《사운드 오브 뮤직》(1959)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제3기는 '뮤지컬의 전환기'로서,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이다. 사회적 주제와 사실적 내용의 진지한 뮤지컬들이 주로 창작되었다. 문학성, 예술성 높은 작품이 선호되고 춤이 더욱 강화되어 뮤지컬의 중심이 되었으며,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것보다는 호소력이 강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또 비틀즈나 앨비스 프레슬리 풍의 전자 사운드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대표작으로는 《헤어》,《코러스 라인》,《지붕위의 바이올린》 등이다. 제4기에 속하는 오늘날의 뮤지컬은 전 시기의 특성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첨단 메커니즘을 사용한 무대 예술에 치중하고 있는 특성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