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기도하라"

성령의 사람은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27-28)

사랑의 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전방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사병의 실수로 수류탄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그는 한 팔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평생을 불구자로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은 그의 여자 친구였다. 그는 차마 여자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해?” “난 너의 팔을 좋아한 게 아니라 너를 좋아한 거야.”

라고 여자 친구가 대답했다. 그 때부터 여자 친구는 병원 옆에 방을 얻어놓고 극진히 간호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부모에게 이 청년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흔쾌히 결혼을 허락할 부모가 몇 있겠는가?


“네 맘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평생을 불구자와 산다는 생각을 해 봐라.”

아버지의 이 말에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딸은 당차게 말했다.

“만일 아버지가 한 팔을 잃을 경우 엄마가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아버지는 딸을 더 이상 말릴 수 없음을 알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년은 한 팔을 잃은 아픔보다 참 사랑을 발견한 기쁨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아내의 사랑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기쁨의 주인공으로 변한 그는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했고, ‘2080치약’을 개발하여 큰 성과를 거두더니 지금은 영상통화를 하는 ‘쇼’(show)를 개발하였다. 그가 바로 KTF의 조서환 부사장이다.


그는 ‘가장 불행한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했다. 자기 인생의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여겼던 때에 아내를 통해 참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한 고난이나 역경은 장애물이 아니라 분발을 위한 도구가 된다. 아무리 힘든 역경이나 난관도 뜨거운 사랑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사랑은 기적을 만드는 특효약이다.


유명한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이다. 성령의 열매에는 두 종류가 있다. 외적 열매와 내적 열매이다. 외적 열매는 은사로 사역과 관련이 있고, 내적인 열매는 신앙인격으로 생활과 관련이 있다. 신자로 하여금 아름답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내적인 열매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고 향기가 있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아울러 우리가 시작한 목장을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되게 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행복한 목장을 위한 열쇠로서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은 첫 번째 열매로 ‘사랑’이다.


사랑의 특성. 우리는 지금 소위 ‘사랑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듯이 사랑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참사랑에 목마른 것이 현대인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오염되었고, 또한 그 의미를 오해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 생각한다. 마음을 떨리게 하는 감상, 가슴을 뛰게 하는 전율, 휘몰아치는 감정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이 이런 감정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사랑은 감정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사랑은 ‘선택의 문제’이다.


성경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4)고 말씀한다. 여기서 ‘더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사랑이 감정의 문제라면 우리는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사랑은 ‘행동의 문제’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요3:18)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행동인 것이다.


특히 주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다. 이는 사랑이 선택과 행동의 문제임을 전제하고 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선택의 문제요, 선택한 바를 실천하는 행동의 문제이다. 이와 같이 선택하고, 선택한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삶을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삶을 위한 실천 단계이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라. 사랑은 감정처럼 우리 마음속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곧 성령의 열매이다. 우리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發光體)가 아니라 달처럼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비추는 존재(反射體)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이는 에베소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이다. 여기에 나온 ‘알다’ ‘깨닫다’ ‘충만하다’는 단어들에 주목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련된 말씀이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충만하게 경험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다. 먼저 주님으로부터 경험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부모의 자녀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말한다. 경험된 사랑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지고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또 그의 자녀를 사랑하여 그 사랑이 세대를 거쳐 흘러가게 된다. 신자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경험한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2. 용서하라.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내(남편)를 미워하면서 동시에 자녀들을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은 자기기만이고 집착이다. 마음이 갈라져 있을 때는 누군가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쓴 뿌리가 있다는 뜻이다. 쓴 뿌리가 있는 한 온전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쓴 뿌리는 과거의 상처에서 자란 것이다. 이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래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이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용서이다.


용서란 상대방이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혹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면 내 자신이 항상 거기에 묶여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말은 내 마음의 일부를, 내 주의력의 일부를, 내 생각의 일부를 그 사람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가 나를 해치도록 내 자신을 허락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비결,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할 수 있는 비결은 용서이다. 그래서 용서의 뜻을 ‘놓아주다’(set free)라고 한 것이다. 용서를 통해 온전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참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3. 사랑스런 생각을 하라.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서부지역에서 여러 광산이 발견되자 동부 사람들이 광맥을 따라 지루하고 힘든 여행을 불사하며 서부로 이동을 하였다. 어느 역에서 한 남자가 어린 아기를 안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를 때부터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울어댔다. 긴 여행에 지쳐서 신경이 예민해 있었던 사람들이라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 남자가 깊이 허리를 숙여 용서를 구하며 말을 했다. 자기 아내가 이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죽어서 지금 아내의 시신을 이 열차 짐칸에 싣고 고향으로 가고 있는데,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라며, 그리고 다음 역에서 내릴 것이니 잠시만 참아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순식간에 열차 안은 숙연해졌다. 불평했던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용서를 구했고, 여기저기서 힘내라는 격려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생각이 변하자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다가 이 남자의 입장,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입장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고 말씀한 것이다. 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 필요, 문제, 열망이나 목표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상대방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 그 너머를 바라보고 그들의 필요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기왕이면 좋게 사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할 때, 서서히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이 바뀌게 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긍정적인 감정이 일어나고, 사랑스런 생각을 가지면 사랑스럽게 보이고 느껴지고 사랑하게 된다.


4.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행동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쉽다. 열정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면 곧 열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행복한 것처럼 행동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 속담에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조상들의 지혜를 본다. 미운 사람, 마음에 안든 사람일수록 더욱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라는 말이다(물론 이것이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매를 더 한다는 말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달라지지만). 그러다보면 그 미운 자식이 사랑스런 자식으로 변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7~28).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을 대하는 구체적인 행동 네 가지를 명령하신다. ①사랑하라. ②선대하라(호의를 베풀라). ③축복하라. ④기도하라. 모두가 깊은 영성을 요구하는 쉽지 않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중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또한 다른 세 가지를 실천하게 하는 열쇠이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최소한 두 가지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는 상대방이 변하게 되고,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자신이 변하게 된다. 상대방이 변하여 회개하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더라 내 자신이 변하여 그를 위해 축복하게 되고, 호를 베풀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삶을 위해서는 실천하는 행동이 중요하다.


5. 최선을 기대하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그 사람이 당신이 바라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사람을 대하라.’는 말이 있다. 남편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남편이 이미 성공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는 것. 자녀가 총명해지기를 원한다면 총명한 아이인 것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교회가 가정이 행복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최선을 기대하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것은 소위 성공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긍정의 원리가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원리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라.”(히11:1)고 하였다. 아직 기대 속에만 있고 보지도 가지지도 못했지만 본 것처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 안에서 기대를 가질 때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 사랑’(고전13:7)이라 했다. 사랑은 그 대상에게 기대를 품게 만든다. 기대가 있고,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도 깊고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대를 가지고 살자. 서로 기대하며 살자.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자신, 목장과 교회, 가정이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기를 원하는가? 믿음 안에서 기대를 가지라. 그리고 이 기대를 가지고 사랑스럽게 행동하고, 사랑스런 생각을 하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경험하여 사랑의 결실을 막고 있는 악한 쓴 뿌리들을 다 제거하라. 그리하여 주님께서 꿈꾸고 계시는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와 가정을 만들어보자.